“보라! 저 사나운 독수리는 높이 떴지만 하늘을 여는 것은 그들이 아니다. 북을 때려라. (.....)북이 없으면 가슴이라도 때리고 가슴마저 거덜이 날 것이면 하늘땅을 때려서라도. 돈이 주인이 아니라 사람이 주인인 세상.”
1983년에 백기완이 스스로 짓고 우렁차게 부른 ‘비나리’의 한 대목이다.
“천년만년을 다지는 북을 때리라”는 그의 절절한 육성은 잠든 역사를 깨워 일으키는 힘이 솟구친다. 하늘을 여는 것은 결국 우리의 가슴 속에 용틀임치는, 사람답게 사는 세상에 대한 뜨거운 갈망이다. 그건 높이 뜬 독수리보다 더 높이 난다.
1960년 젊은 어느 날 그가 어두운 시대의 뒷덜미를 한 손에 움켜잡고 외롭게 토해낸 또 다른 비나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백년을 헤매고도 한치 앞을 못보고 천년을 당하고도 그 일렁이는 노여움에 불길을 당길 줄 모르는 놈이 어찌 무엇에 취하자 하는가? 술잔을 놓아라.”
1921년,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식민지 조선의 20대 청년 현진건은 ‘술 권하는 사회’라며 술에 취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슬픈 현실에 절규했지만, 백기완은 제 정신 바로 차리지 못하고 살려면 아예 취할 자격도 없다며 술잔을 놓으라고 벼락같이 외친다. 그땐 그도 스물일곱의 새파란 청춘이었다.
그런 그였기에 저 5월의 태양이 비통해하던 1980년, 글쓰기가 허락되지 않았던 감옥에서 입으로 천정에 썼다고 하는 ‘젊은 날’은 그 시절을 “바람처럼 번개처럼 뜨거운 것이 빛나던 때”라면서 “개인을 이야기하면 역사를 들이댔고 (.....) 헐벗고 굶주려도 결코 헤매이질 않았다”고 털어놓는다. 하지만 이젠 세월이 펼쳐놓은 백발이 막을 길 없는 거친 파도처럼 그의 머리를 온통 뒤덮는다. 언제 이리 되었나 싶게 팔십 고개를 숨차게 넘으려는 중이다. 한때 질주하는 표범이요, 물러서지 않는 늑대의 기세로 한 시대를 몰아친 그도 시간 앞에서 노목(老木)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그는 부르짖는다.
“백번을 세월에 깎여도 너는 늙을 수가 없구나.”
가파른 현실 속에서 여전히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비나리’란 온 마음을 다해 하늘에 빌고 비는 간절함이 배어나는 기원(祈願)의 가락이다. 헤매고 당하고 억울하게 휘청거리고 있는데도 비나리가 없다면 그건 넋이 나간 역사다. 혼 줄을 놓친 비극이다. 먹구름이 낀 동아시아의 현실에서 이제 우리가 부를 비나리는 과연 무엇이 되어야 할까?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