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밤 반찬 뭐 해 먹을까’와 ‘어떤 초경량 패딩점퍼를 마련할까’가 다급한 일상의 고민거리였던 내게 ‘전쟁’이라는 단어가 부각이 되기 시작한 것은 일련의 사건들 때문이었다.
첫째, 평소 강박증 증세가 있던 절친 동생이 이번 연평도 사태로 불안증세가 도져 괴로워했다. 여행가방에 분유와 기저귀와 이유식을 바리바리 쟁여놓는 그녀를 보고 가족들은 경악했다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에이, 뭐 터지면 다 같이 죽는 거지’라고 씁쓸해 하고 마는 가운데 이처럼 진심으로 전쟁 공포증을 끙끙 앓는 사람들은 의외로 주변에 많다.
둘째, 간만에 친정 집에 안부전화를 드렸더니 지금 부산에 가 계신단다. 뜬금 없이 왜요, 여쭈니 피난 내려가셨단다. 허걱, 우리 빼고 간 당신들, 부모 …맞습니까? 하필 지금 남편은 ‘평화’의 나라, 스위스로 출장 갔고 하필 우리 집은 용산 미군기지 바로 옆인데!
마지막으로 광화문 시내에 볼일 있어 나갔다가 보수우익 단체의 북한만행 규탄대회를 보았다. 군복 입고 선글라스 낀 장년층 남자분들이 어서 북한으로 쳐들어가 응징하자고 외쳤다. 뒤숭숭했다.
그래서 “전에 없던 전쟁 공포증이 생겼느냐”고 물으면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다. 전쟁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라서 감이 안 오는 걸 수도 있고, 지금 시대에 전쟁 나면 깡그리 사라질 거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일 수도 있고, 혹은 이 나라의 결정권자(세상에, 지금은 내 목숨에 대한 결정권도!)에 대한 불신과 ‘내가 뭘 어쩔 수 있겠어’라는 무기력감이 한데 섞여 불감증의 ‘……’을 만들어내는 것 같다.
국민이 대체적으로 많이들 ‘……’ 이러고 있어서 결정권자들은 여태 모르는 걸까?
한·미연합훈련이 유사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방어준비 태세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유사시’ 자체가 일어나선 안 됨을.
여당 대표가 비장하게 전면전 발발 시 친히 군에 입대하겠다고 했지만 ‘전면전 발발 시’ 자체가 일어나선 안 됨을.
죽이자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어도 정작 본인이 죽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불과 얼마 전 이라크의 교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