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대륙에서 불과 2㎞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금문도(金門島). 하지만 엄연한 대만의 영토다. 이곳의 특산품인 ‘포탄 나이프’가 처절했던 과거를 말해준다. 말 그대로, 포탄 껍질을 갈아 만든 칼이다.
‘금문 고량주’와 함께 널리 알려진 관광상품으로, 인민해방군에 의한 1958년의 포격사태를 되새기는 증거이기도 하다. 포격 2시간 만에 무려 4만 발이 퍼부어질 만큼 상황은 위태로웠다. 이미 국공내전 당시이던 1949년 1만 명의 병사를 상륙시켜 점령을 시도했다가 완전한 패배를 맛본 인민해방군이었다.
한편으로는 대만 정부에 대한 최후통첩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대만 지도부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해안 일대에 지뢰를 촘촘히 매설하는 한편 땅속으로 연결되도록 섬 전체를 지하 요새로 만들었다. 미국의 적극적인 지원도 큰 몫을 거들었다. 결국 포격 세례는 두 달 만에 제풀에 꺾이고 말았다. 물론 포격은 그 뒤로도 1979년까지 간헐적으로 이어졌으나 대륙의 자존심을 앞세운 헛기침에 불과한 것이었다. 요즘은 양안 화해무드에 따라 평온을 되찾았지만 그때의 긴박했던 흔적은 금문도 곳곳에 남아 있다.
이번에 북한군의 집중 포격을 받은 연평도의 처지가 금문도와 비슷하다. 그 옆에 올망졸망한 백령도·대청도·소청도·우도도 마찬가지다. 일촉즉발의 교전상황이 벌어져 열흘여가 지나가는 지금 이들 서해 5도의 풍경은 그 전과는 상당히 바뀌었다. 포격에 불타버린 연평도의 뒷산이나 마을 주택가의 모습 자체가 그렇다. 이곳에 대대로 터 잡고 살다가 옷 보따리만 챙겨 뭍으로 허겁지겁 피난 나온 주민들의 심정은 과연 어떨 것인가.
다행인 것은 주민들이 속속 섬으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포격으로 뜯겨나간 담벼락도 고치고, 김장도 담그고, 그물도 손질하고 있다고 한다. 마침 조업금지 조치도 해제되어 꽃게잡이 출어 준비를 서두르는 어선도 적지 않다는 소식이다. 물론 아직은 인천 찜질방에 머물면서 귀환을 망설이는 경우도 상당수에 이른다. 당장이라도 또다시 교전이 시작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어느 누가 기꺼이 돌아가려 하겠는가.
연평도에 주민들을 불러들이려면 국가 안보의 요충지로서 철저한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유사시에 안심하고 대피할 수 있는 방공호 시설과 생계 해결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곳에서 파시철에도 조기잡이 뱃사람들의 흥청거리는 노랫소리를 듣기 어려울 것이다. 오래전에 지뢰 제거 작업을 끝내고 관광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는 금문도의 얘기가 부러울 뿐이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