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정 배우가 되고 싶어 연극영화과의 문을 줄기차게 노크했다. 결과는 낙방의 연속.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1996년 데뷔 이후 10여년 간 영화사에 뿌린 프로필 원서만 수 백 통. 매니지먼트의 도움 없이 독립영화부터 차근차근 연기자의 길을 밟았다. 결실은 지난해부터 서서히 거두고 있다.
‘시크릿’의 어리숙하지만 천재적인 두뇌를 자랑하는 범죄자를 시작으로 ‘부당거래’의 부패한 기자와 ‘쩨쩨한 로맨스’의 눈치 100단의 무명 만화가까지 여러 편의 화제작에서 물 만난 고기처럼 제 실력을 과시 중이다. 바로 오정세(33)다.
◆든든한 친구들이 있어 행복해
대학 신문방송학과에 진학했지만, 모든 관심은 연기에 있었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배우 명계남이 운영하던 새내기 연기자 양성기관 액터스21 아카데미. 연극배우 오지혜의 지도를 받아 가며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부당거래’에 함께 출연한 정만식 등과 한솥밥을 먹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눈물젖은 빵’으로 친해졌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뭘 모르시는 말씀! 주머니에 비록 돈은 없어도 함께 있으면 언제나 즐거웠고, 미래의 계획을 털어놓을 수 있어 행복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모두가 바빠져 모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만나면 영화에 대한 열정은 한결같다.
“연말 모임을 술 먹는 자리 대신, 그 돈을 아껴 각자가 단편영화를 찍고 상영하는 자리로 대신한 적도 있어요. 아직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저를 포함해 모두가 조금씩 자기 자리를 찾는 것 같아 뿌듯하죠.”
◆힘없는 건달 or 비열한 양아치
선량해 보이지만 날카로운 눈빛때문일까? 건달과 양아치가 단골 캐릭터다.
‘부당거래’에서 기자 역을 제의받았을 때는 살짝 놀랐다. 이른바 ‘가방끈’이 꽤 긴 직업이었기 때문이다. “검사 주양(류승범)으로부터 은밀한 거래를 제안받으며 도우미의 가슴을 만지는 장면에서는 더 적극적으로 연기하라는 질타도 받았어요. (웃음) 실제 기자들을 만나면 미움 사지 않을까 걱정도 했는데, 다행히 재미있게 봤다며 좋은 말씀을 해줘 마음을 놓았습니다.”
곧 있으면 촬영에 들어갈 새 영화 ‘창수’에서는 본업으로(?) 돌아와 다시 밑바닥 청춘이다. 임창정과 호흡을 맞춰 인천을 배회하는 양아치를 연기한다. 어떤 배역이든 가릴 처지는 아니지만, ‘루저’ 캐릭터가 익숙한 것을 보면 아직 젊다는 증거다.
◆ 사람 냄새 나는 배우 되고파
선배 황정민의 “착한 배우가 연기도 잘한다”는 지론에 동의하는 편이다. 인간 됨됨이가 연기에 배어나서다. 올바른 가치관이 없으면 좋은 연기가 나오기 어렵다고 믿는다.
4년 전 결혼한 아내와의 사이에 세 살배기 딸을 두고 있다. 가족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기자로 남고 싶어 매일 아침 초심을 되잡는다.
“저나 아내나 연기와 생활은 별개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길에 나가면 알아보는 분들이 조금씩 많아지고 있는데, 약간 불편합니다. 사람 냄새 나는 연기자로 인정받고 싶지만, 유명세로 본모습을 잃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어요.”
사진/서승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