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 달 동안 야쿠르트 임창용의 거취문제는 한·일 야구계의 화젯거리였다. 임창용은 처음에는 결렬 조짐을 보였으나 조금씩 잔류 쪽에 무게가 실렸고 최대 15억 엔(205억원)에 이르는 3년(3년째는 구단옵션) 계약에 합의했다.
임창용은 입단 당시 고작 30만 달러짜리 선수에 불과했으나 불과 3년 만에 500만 달러를 받는 초특급 선수로 달라졌다. 일본으로 떠나기에 앞서 “100억원만 벌어오겠다”던 큰소리가 결코 허풍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의문은 임창용이 일본이 아닌 한국에 남았다면 이처럼 성공할 수 있었을까.
임창용이 2007시즌을 마쳤을 당시 존재감은 미약했다. 겨우 5승에 그쳤고 방어율은 4.90의 평범한 투수로 전락했다. 한때 마운드를 지배했던 무적의 소방수는 아니었다. 소방수로 살인적인 등판에 이어 선발, 중간으로 내돌렸다. 결국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까지 받았고 재기 가능성은 극히 희박했다.
그에게 더 이상 모멘텀은 없었다. 그러자 일본행을 선택하는 도박을 감행했다. FA 자격을 얻은 것은 아니지만 삼성이 더 이상 임창용의 활약을 기대하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임창용은 일본 야구의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 그가 3년 동안 던진 등판 횟수를 보라. 164경기에서 불과 163.2이닝뿐이다. 경기당 1이닝. 얼마나 세심한 관리를 받는지 극명하게 나타난다. 그가 한국에서 최고의 소방수로 활약했던 1997년부터 4년간은 경기당 2이닝에 가까웠다.
그래서 한국에 남았다면 160km짜리 공을 뿌리거나 잭팟은 불투명했을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는 야구인들이 많다. 고국 팬들에게는 아쉽지만 임창용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동기와 희망을 찾았고 인생역전을 이루어냈다.
/OSEN 야구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