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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임시정부 대일 선전포고

일본의 진주만 기습으로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자,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1941년 12월 오늘 대일 선전포고를 발표한다. 개전 하루 만에 김구 주석과 조소앙 외교부장 명의로 일본에 전쟁을 선포한 것이다. 51년 9월, 48개국 연합국과 일본 간의 강화조약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체결될 때 이승만 대통령이 이 선전포고를 근거로 “우리도 연합국의 일원으로 조인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할 만큼 임시정부 26년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건이었다. 결국 우리나라는 일본의 반대로 조약 참여국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선전포고는 광복군이라는 무장병력을 갖췄기에 가능했다. 40년 9월 창설된 광복군은 출범 당시 부대원이 30여 명에 불과했고, 무기도 변변치 않았지만, 조선의용대 일부 세력과 중국국민당의 군사원조를 받아 체계를 갖췄다. 43년 8월에는 인도 미얀마 전선에서 9명의 광복군 공작대가 연합국 일원으로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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