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모를 놓아주긴 싫었지만, 다시 강모가 되더라도 더 잘할 것 같다는 아쉬움은 없어요. 100점 만점은 아니더라도 A 는 주고 싶습니다.” 이강모와 치열한 여행을 끝낸 이범수(40)는 “후회도 없고 미련도 없다”며 예의 호탕한 웃음을 지었다.
안방 아버님들 ‘강모 열혈팬’
“월요일 점심에 모든 촬영이 끝났는데 발이 안 떨어지더라고요. 마음에 뭔가 막 차올라 그 자리에서 아이디 만들고 회원 가입해 드라마 게시판에 글을 올렸어요. 2010년 참 멋진 여행을 한 것 같다고요.”
봄에 만난 강모는 들꽃 같은 여자와 사랑을 하고 불볕 더위 아래 삼청 교육대를 지났다. 차가운 가을바람처럼 서늘한 눈빛을 품었다가 겨울에 이르러 유종의 미를 거뒀다.
“채널권을 뺏겼던 아버님들이 ‘자이언트’ 덕에 리모컨을 쥐게 됐다며 좋아하셨어요. ‘자이언트’는 선 굵고 무게감이 느껴지는 파워풀한 드라마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화려한 출발과 달리 초반 시청률 부진을 겪었다. 60부의 긴 호흡에도 나가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막판 뒷심을 발휘한 드라마의 행보는 어떤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극 중 강모의 모습 같았다.
“배우가 자기 컨트롤을 제대로 못하면 신경 쇠약에 걸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강모는 휴머니즘, 멜로, 집념, 야망을 모두 보여줘야 하는 친구였죠. 다중인격이 되지 않게 중심을 잘 지키는 것이 내내 숙제였어요. 밤샘 촬영으로 졸음이 몰려와도 이글거리는 복수의 눈빛을 드러내야 할 때는 정말 힘들었습니다. 하하.”
시작부터 단독 주연, 원톱 배우를 꿰차는 여느 배우들과 달리 조연부터 한 계단씩 정석 코스를 밟아온 그다. 스크린에서 입지를 다질 때 안방극장에 도전했고 ‘외과의사 봉달희’ ‘온에어’에 이어 트리플 흥행을 일구게 됐다.
“그토록 바라던 주연이지만, 부담감도 커졌죠. 특히 ‘자이언트’는 작품성과 시청률에서 모두 칭찬을 많이 받아서 어깨가 무거웠고요. 하지만 주인공이라서 느끼는 명예로움 같은 게 있어요. 이번에도 그 명예로움을 잘 지켜낸 것 같아요.”
첫 대본받고 트로피 욕심
올 한 해 SBS에 유난히 히트 드라마가 많았던 만큼 연말 연기 대상을 놓고 각축을 벌이는 경쟁자도 많아졌다. 한 해를 오롯이 이강모로만 살아 온 그에게는 연기 대상이 트로피 그 이상의 의미일 수밖에 없다.
“욕심이 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죠. 올해 1월에 처음 대본을 받고 하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부터 이강모야말로 연기대상 감이라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만큼 빛나는 캐릭터였고 그런 이강모를 멋지게 그려내고 싶었어요.”
5월 미모의 국제 통역사 이윤진씨와 결혼에 골인한 그는 내년 봄 아빠가 된다. 11년간 배우 이범수와 인간 이범수의 성장을 함께한 팬들이 뽀로로 인형세트를 선물했다.
“얼마 전에 입체 초음파 사진을 봤는데, 딸이더라고요. 엄마를 닮았을 줄 알았는데 어렸을 때 저랑 똑같던데요? 하하. 저를 닮은 딸이라니 기분이 묘해요. 다음 작품은 영화 차례가 될 것 같아요. 우선은 신혼여행 잘 다녀오고, 아내에게 잘해야죠.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