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고흥길(사진) 정책위의장이 12일 새해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의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민생·불교 예산 등 당이 공약한 예산이 누락 처리된 것에 대한 책임 차원인 동시에, 예산안 단독 강행처리 뒤 거센 비판 여론에 대한 무마 노력으로 보인다.

고 정책위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꼭 반영해야 할 예산들이 빠진 것은 이유 불문하고 마땅히 가책받을 일”이라며 “내 사퇴로 이 문제가 일단락되기 바란다.

여론을 감안한 듯 최근 한나라당은 잇따라 반성과 사과를 내놓고 있다. 예산안 처리 당시 ‘주먹질’을 한 김성회 의원은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과 당원께 대단히 송구스럽다”고, ‘손가락질’을 한 이재오 특임장관은 “내가 수양이 부족했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가) 화난 마음을 풀어주기 바란다”고 각각 사과했다. 이 장관은 특히 이날 서울광장에서 장외투쟁 중인 민주당 손학규 대표를 예고 없이 찾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측의 거부로 금세 떠나야 했으며, 이 과정에서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손가락질’ 시위를 당했다.

이처럼 여당의 의도와 달리 야권은 “몸통은 두고 꼬리만 자른 격, 사퇴할 사람은 따로 있다”(민주당) “사람 하나 자르고 책임을 다한 것처럼 굴지 말라”(진보신당) 등 공세의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도 정책위의장 하나 희생양 삼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 관계자도 “책임론의 화살은 정무판단을 잘못한 당대표나 원내대표에게까지 날아갈 수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다른 관계자는 “2년 전 홍준표 원내대표 사퇴론이 나왔을 때는 추경예산안 처리를 실패했기 때문”이라며 “이번엔 예산안 처리를 성공하고도 누군가가 물러나야 할 정도로 엉터리였다”고 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