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예술극장에서는 지금 ‘돈키호테’를 공연하고 있다. 원로 배우 이순재가 중견 배우 한명구와 함께 돈키호테 더블 캐스팅으로 출연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중이다. 공연장 로비에 들어선지 좀 지나, 연극배우 강태기와 마주쳤다. 오랜만이었다. 1978년 ‘에쿠우스’의 주연으로 나온 것을 대학 시절 본 뒤 꼭 30년이 지난 2008년, 대학로 소극장에서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통해 애잔한 감동을 준 그를 다시 만났던 것은 예상치 못한 즐거움이었다. 청년 시절의 추억과 그런 시간이 흐른 현실에서 여전히 훌륭한 연기를 하는 모습이 하나로 합류한 감동이라고 할까.
연극 ‘돈키호테’ 역시 청년 때에 흥미진진하게 탐독했던 책 속의 인물이 걸어 나와 무대 위에서 현실과 새롭게 마주하고 있었다. 1605년에 출간된 세르반테스의 작품 ‘돈키호테’는 출간 400주년을 기념해서 국내에서는 2005년에 돈키호테 제2권까지 완역된 상태다. 원제는 ‘재치 있고 기발한 시골 양반 라만차의 돈끼호떼’로, 최초의 서구 근대소설로 평가되는 작품이다. 그런데 ‘돈키호테’하면 흔히들 현실과는 동떨어진 환상에 사로잡혀 “미친 거 아냐?” 하는 조롱거리가 되는 존재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그런 인물을 작품화하려 했던 것은 단연코 아니다. 16세기에서 17세기 초에 이르면 스페인은 대서양을 지배하는 강국이 되고 남아메리카에서 들어온 금으로 유럽 최고의 부국이 된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마음은 탐욕과 이기심에 가득 차서 정의감이나 명예, 품격, 그리고 진정한 사랑에 대한 열망은 식어간다. 불의에 맞서는 용기는 온데간데없어졌다. 돈키호테는 이런 현실에 온몸을 던져 부닥친 중세의 기사다. 원작은 그를 ‘나이 쉰의 노인’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요즘으로 치면 칠십 가까운 노년의 인물이 된다.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고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나 늙어버린 그를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그와 길동무가 되는 것은 순박한 농부 산초 판자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은 그런 그를 시대착오적이라고 비웃고 풍차에 대드는 그를 보고 달걀로 바위를 치는 자라고 조소한다. 돈키호테는 그 시대의 바보다. 그러나 그런 바보가 있기에 세상은 결국 눈을 뜬다. 우리에겐 그런 돈키호테가 있기나 하는 걸까? 돈키호테 없는 세상은 시시해져 간다.
/성공회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