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빛 본 지 몇 달 되지 않은 영아가 스무 살 성인이 될 때까지 꼬박 20년을 채우겠다고 했다. 톱 클래스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善)이자, 인간 대 인간으로 나누는 유쾌한 눈맞춤이다.사진가 조세현이 올해로 8회째 ‘사랑의 사진전-천사들의 편지’(15∼2월 20일, 인사아트센터)를 연다.논현동에 위치한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 따뜻한 차 한 잔을 나눠 마셨다.
Out Focus
몸값만 수억원대에 이르는 톱스타들이 무보수에 민낯으로 들락거렸다. 갓난아이를 안고 얼러야 하는 예민한 작업을 하면서 그들은 감격에 겨워 했고, 촬영이 끝나도 자리를 쉬이 뜨지 않았다.
조세현이 카메라를 업으로 삼은 지 27년째. 그의 피사체가 된다는 것은 스타가 됐다는 증명이었다. 가장 화려한 얼굴들을 앵글에 담아온 그가 굳이 일은 많고 득은 없이, 명분만 남는 입양아 사진전을 여는 이유는 흔한 측은지심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감 때문이었다.
1년에 9000여 영아가 부모로부터 선택받지 못한 채 태어나고 이 가운데 30% 미만이 입양된다. 남겨진 아이들이 시설에 맡겨져 양육되고 성인이 돼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때까지 비용은 국민의 세금이 충당한다.
누구를 돕는 일에 세금이 아까우랴. 건강하고 바른 정신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책임이 더 무겁다. 조세현은 8년 전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구해야 하는 생명들에게 징검다리를 놔주기로 했다. 주변에선 ‘굳이 왜…’라고 갸우뚱 했다. 그로서는 그들이 더 의아했다.
Zoom In
“원래는 망해야 할 전시입니다. 경제강국이면서 동시에 아동수출국이라는 게 우리 사회의 현주소입니다. 이 사진전은 프로페셔널 작가로서 아주 의미 있는 전시이면서, 이제 막 태어난 작은 인간에게 부모를 만들어주는 일종의 사회적 의식이기도 하지요.
사실 작업 자체로만 치면 촬영은 까다로워요. 아기에게 적합한 온도와 습도를 맞추고, 울거나 아픈 아기들에겐 기다렸다가 다시 다가가는 참을성도 필요합니다.
제 사진엔 계층 구분이 없어요. 아기와 스타는 없고, 인간과 인간이 공평하게 만나 서로 교감하는 순간만 있을 뿐입니다. 내가 가진 힘이라면 오랫동안 쌓아온 대중예술계의 셀러브리티들과의 교분입니다. 그들과 저와의 신뢰가 바탕이 됐지요. 그 소중한 교분으로 사회에 보탬이 된다면 결국 나 자신에게 좋은 일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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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전을 위해 조세현은 두 버전의 팸플릿을 만들었다. 이병헌과 이승기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담겼다.
스타여서 마음을 내놓는 일이 더 어려운 이들에게 조세현은 일종의 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병헌은 담담한 마음으로 스튜디오를 찾았다가 깊은 감동을 얻어 간 케이스다. 이승기는 8년 동안 세 차례나 촬영에 참여해준 전시의 또 다른 주인공이다. 올해 이승기는 대한사회복지회로부터 감사패를 받는다.
고소영은 5년 전 이번 사진전에 참여한 것을 계기로 대한사회복지회와 연을 맺어 최근 1억원을 기부해 화제를 모았다.
조세현은 내년 5월 다문화가족 사진전을 열 계획이다. 스타급 사진가는 자신의 실천들에 수식어 붙이기를 거부했다. 시선이 닿는 곳에 손을 뻗으며 사는 것, 그것으로 충분히 멋진 삶이라고 했다. /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