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론가 정성일이 영화를 찍는다는 소문이 돌았을 때, 사람들은 아직 내용도 발표되지 않은 그 영화를 패러디하기 시작했다. 그들이 상상하는 영화들은 모두 비슷비슷했다.
모든 등장 인물들이 정성일 특유의 문어체로 서구 문화의 교양으로 가득 찬 대사를 장황하게 읊는 걸 10분이 넘어가는 롱테이크로 잡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 그렇다면 시작부터 관객들이 이렇게 삐딱한 태도로 바라보는 영화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그대로 밀어붙일 것인가, 아니면 관객들이 예측하지 못한 전혀 다른 것을 보여줄 것인가.
결국 완성된 정성일의 첫 영화 ‘카페 느와르’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그렸던 패러디 영화에서 크게 벗어난 것 같지는 않다. 일단 세 시간이 넘는다. 러닝타임에 비해 컷 수는 이상할 정도로 적으며 10분이 넘어가는 롱테이크도 있다. 주인공들은 그냥 문어체 대사를 읊는 게 아니라 마치 서양 소설의 옛날 번역물을 어색하게 낭송하는 것처럼 말을 한다. 봉준호의 ‘괴물’부터, 박찬욱의 ‘올드보이’에 이르기까지 온갖 영화들이 인용되고 심지어 영화의 원작은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도스토옙스키의 ‘백야’다. 몇 년 동안 돌고 있던 패러디가 그대로 완성된 것 같다.
예측에서 벗어난 점이 있다면, 예상 외로 지루하지 않고 썩 재미있기도 하다는 것이다. 이 영화를 상식적으로 정의하는 장르가 하나 있다면 그것은 코미디, 그것도 패러디 코미디가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2008년 서울의 공간, 그것도 청계천에서 ‘젊은…’의 번역서에서 그대로 따온 것이나 다름없는 대사를 아무런 아이러니를 섞지 않고 진지하게 읊는 광경을 상상해보라. 어쩔 수 없이 코미디가 된다.
이 작품은 모두가 칼을 갈며 기다려왔던 비평의 대상 치고는 정공법을 허용하지 않는다. 구성하는 모든 것들은 이중 삼중의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 관객들은 어색한 대사, 반복되는 화면 구성, 이상한 연기, 의도하지 않은 것 같아 보이는 코미디를 비판할 수 없다. 이미 그 모든 것들은 완벽한 변명과 설명을 갖고 있으며 심지어 그 변명에 대한 질문에도 답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카페 느와르’는 어쩔 수 없는 비평가의 영화이다. 물론 이에 대한 답변 역시 미리 준비해놓고 있다는 점은 말할 필요 없으리라. 3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