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이 아닌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배우는 의외로 많지 않다. 내년 1월6일 ‘심장이 뛴다’의 개봉을 앞둔 김윤진(37)은 어떤 주제를 꺼내더라도 거침이 없고 화통했다. “어떻게 하면 멋있게 나이를 먹을 수 있을까 고민중”이라는 그의 속내를 들여다봤다.
▶ 추워지면 오는 이유
올 1월 ‘하모니’의 흥행 성공에 이어 ‘심장이 뛴다’가 새해를 장식한다. ‘세븐 데이즈’가 2007년 11월에 개봉됐던 것을 떠올리면 작품들 대부분이 연말 혹은 연초에 집중되는 편이다.
누구는 일부러 시기를 고르는 게 아니냐고 묻는다. 그러나 전혀 의도하지 않은 결과다. 미국 드라마 ‘로스트’의 촬영 기간을 피해 한국에서 일하다 보니 추운 계절에 주로 신작을 선보이게 됐다. “하와이에서 ‘로스트’를 해마다 여름부터 봄까지 촬영하고, 한국으로 와 새 영화를 찍게 되면 대부분 겨울로 개봉 일정이 잡히더라고요. 6년동안 ‘로스트’에 출연하면서 아무래도 그 쪽에 활동 사이클을 맞추다 보니 한국영화는 촬영할 수 있는 기간이 한정될 수밖에 없었죠.”
▶ 해일씨? 해일아?
박해일과 이번 영화로 처음 만났다. 김윤진은 언제 심장이 멈출 지 모르는 딸을 지키려는 엄마로, 박해일은 엄마의 심장을 지키려는 아들로 각각 나와 불꽃튀는 연기 대결을 펼치지만, 각자가 다른 공간을 휘젓고 다니느라 정작 만나지는 못한다, 제대로 얼굴을 마주하는 장면이 거의 없어 친해지기 어려웠던 이유다. “(박)해일 씨랑 더 친해져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죠. 아직도 말을 놓기가 쑥스러울 정도랍니다. 술이라도 한 잔 같이 했으면 좋았을텐데, 제가 술을 입에도 대지 못하거든요.”
하루는 김윤진이 불법 장기 거래 브로커 역을 맡은 김상호와 촬영하는 날이었다. 박해일이 예고없이 촬영장에 놀러왔다. 김윤진은 내심 ‘나랑 친해지려고 왔다 보다’라고 생각하며 내심 뿌듯해했다. 그러나 웬걸! 알고 보니 ‘이끼’로 단짝이 된 김상호와 소줏잔을 기울이기 위해 온 것이었다.
▶ 모성애 전문 배우
세 편 연속 엄마를 연기했다. ‘이번에도 또 엄마야?’라는 불평이 나올 법하다. “‘심장이…’의 출연 제의를 받고 살짝 고민했던 것은 사실입니다. 자식을 구하는 엄마로만 계속 나오는 것에 다양한 캐릭터를 연기하는 배우로서 아쉬움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죠.”
30대 후반의 여배우가 맡을 수 있는 배역이 몇 안된다는 게 고민거리다. 또래 여성 연기자들의 가장 큰 걱정이다. “저희들끼리 만나면 주로 나누는 화제죠. 선배님들이 그랬던 것처럼, 40대가 되면 의지와 상관없이 엄마로만 가야 할 것같아 조금 우려됩니다. 그런데 실은 할리우드도 사정은 우리와 비슷해요. 여기나 거기나 여배우들을 위한 시나리오가 많지 않은 것은 똑같아요.”
▶ 자랑스러운 장동건
미국 LA에서 장동건이 출연한 ‘워리어스 웨이’의 대형 포스터를 보고 가슴 한구석이 뿌듯해졌다. 아시아 배우의 주연작이 할리우드에서 개봉되기까지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다.
아시아 배우들이 할리우드의 중심에 서려면 현지 동포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콘텐츠 구매력이 지금보다 더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미국 전체 인구의 각각 10% 이상을 차지하는 라틴계와 아프로 아메리칸(흑인)은 같은 피부색의 배우가 주연으로 나오는 영화라면 선뜻 지갑을 연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이들을 위한 작품을 자주 만들 수밖에 없는 이유다. “(미국 전체 인구의) 3% 안팎에 불과한 아시아인들의 숫자가 더 늘어나야겠죠. 그리고 동포들 대부분이 한국에서 방영되는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들을 비디오나 인터넷 다시보기 서비스로 즐겨보는 편인데, 앞으로는 아시아 배우 혹은 가수들이 주도하는 콘텐츠를 많이 구입해주셔야 저희들이 힘을 키울 수 있다는 것도 알아주셨으면 해요. 사진/서승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