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 상담 중에 뭐가 가장 어렵느냐고 누가 묻는다면 단연 가족문제 상담이라고 말하고 싶다. 가족이라고 하면 흔히들 ‘행복’ ‘보호’ 등의 따뜻한 컨셉트와 연동하는데 ‘국가’ 같은 하나의 불가피한 시스템처럼, ‘가족’은 많은 경우 폭력을 낳기 쉬운 이중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가족 문제의 흥미로운 점은, 점점 깊이 파고들면 들수록 남녀의 성 역할 갈등에 맞닿아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로 제보자는 가정의 감정노동, 육체노동 제공자인 지쳐 있는 여성들이기가 쉽다.
고민 상담이 힘들어지는 것은 비단 그 문제의 힘겨움만이 아니라 그 문제를 토로하는 것 자체에 대한 죄책감이 이중으로 작용했기 때문인데, 이것은 한국 특유의 가족주의적 정서로 인해 자신이 소극적으로 주장하는 개인의 행복추구권이 자못 불순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가족주의가 가족의 평화를 위해, 사랑의 대가를 치르기 위해,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고 해도 말이다.
그러나 가족의 행복은 한 개인의 불행 위에 쌓아 갈 수는 없다. 얼렁뚱땅 미화되고 넘어갈 수도 없다. 개인의 행복을 추구할 균등한 권리를 가진 가족구성원 개인들 간의 합리적 절충안이 없을까 늘 고민하게 되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참 이 사회에서 비주류 개인주의자 같아 말문을 열 때마다 가슴 한편이 무거워진다. 특히나 그런 갈등의 조짐을 본능적으로 감지하는 이 나라의 미혼 여성들이 그 부담스러운 문제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경제력 있는 남자를 선택하거나, 차라리 결혼을 안 하거나, 하는 양자 선택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볼 때 마음속은 더욱 굳은 눈덩이 마냥 묵직해진다.
성 역할의 뿌리 깊은 갈등 구조를 뿌리째 흔들기는 힘드니 돈이 그 많은 문젯거리를 미연에 방지하거나 사후에 해결해주는 현실적으로 속 편한 방향을 선택하는 것을 어찌 단순히 계산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을까.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서울시민 가족생활 통계’는 이토록 ‘안’ 로맨틱한 우리 성인 남녀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