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딴 거대 이슈에 밀려있지만, 최근 정치권에서는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한나라당 의원 22명이 지난 16일 “앞으로 힘으로 밀어붙이는 국회의 의사진행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성명을 낸 일이다.
남경필 황우여(이상 4선) 권영세 이한구 정병국(3선) 신상진 임해규 진영(재선) 구상찬 권영진 김선동 김성식 김성태 김세연 김장수 성윤환 윤석용 정태근 주광덕 현기환 홍정욱 황영철(초선) 등 대부분 수도권 의원들이다.
의원들의 성명은 여러 측면에서 ‘정치적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선 “더이상 청와대 거수기 노릇 안하겠다”는 것을 공식화한 셈이어서 ‘친이계가 붕괴한 것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정권 레임덕의 초기 징후를 보여주고 있다는 염려마저 제기된다. 지난 20일 열린 박근혜 전 대표의 ‘복지 세미나’ 행사장에 70여명의 의원이 몰린 것에 연결지어 받아들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청와대와 정부쪽에서는 한숨소리가 크다. 당장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것이기 때문이다. 당 지도부는 “자유선진당과 미래희망연대 등의 협력을 이끌어 낼 수 있어 큰 문제는 아니다”라고 하고 있지만, 어찌됐거나 비준안 처리에는 상당한 에너지가 필요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한나라 당내에서는 시선이 싸늘하다. 대표적인 ‘보신(保身)행위’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근본적인 제도 개선은 요원한데 몸싸움만 거부하겠다며 자기 이미지만 관리했다”는 지적들이다. 일각에서는 FTA 문제가 제기되는 순간 한나라당은 심각한 내분에 휩싸일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민주당도 이들과 청와대와 틈새 벌리기로 이를 부추기고 있다. 민주당 의원 24명도 동조 성명을 내고 “주요한 쟁점사항에 대해서는 여야 합의없는 일방적 처리에 명확히 반대 입장을 밝힌 것에 관하여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앞으로의 행보에 주목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명을 낸 22명의 의원들은 “이를 지키지 못하면 19대 총선에 불출마하겠다”고 못을 박아버린 만큼 ‘명분 싸움’에 앞장설 것으로 보인다. 제도 개선을 위해 이리저리 힘을 모으는 과정에서 여야 및 당내 역학 관계에도 일정한 변화를 가져올 개연성도 예상된다. 1차적으로는 당·청 관계가 손상을 입게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번 성명은 총선과 대선을 코 앞에 두고 의원들의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지금까지 의원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쏟아냈던 성명과는 차원이 다른 파장을 낳을 수 있다는 예상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이선훈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