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영화계는 ‘즐거운 지옥’이다.
워낙 사건·사고가 많아 한 해가 어떻게 지나가는 줄도 모를 만큼 정신이 없지만, 변화의 속도와 영화인들의 열정은 그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매년 되풀이되는 위기설에도 2010년 한국 영화는 지칠 줄 모르는 도전 정신으로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올 한 해 희비가 교차했던 영화계의 ‘굿 뉴스’와 ‘배드 뉴스’를 각각 5개씩 정리했다.
굿 뉴스 5
1. 이창동 감독의 ‘시’, 칸 각본상 = 지난 5월 열린 제63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시’가 경쟁 부문의 각본상을 받았다. 이창동 감독은 제5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감독상 수상과 더불어 명실상부한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하녀’는 동반 진출해 호평을 얻었다.
2. 중견 여배우들의 저력 과시 = 16년 만에 복귀한 윤정희는 ‘시’로 칸에서 강력한 여우주연상 후보로 떠올랐고, ‘하녀’의 윤여정은 국내 영화상 조연상을 독식하다시피했다. 이 밖에 나문희는 ‘하모니’와 ‘육혈포 강도단’에서 연달아 주연을 맡아 관객들을 울리고 웃겼다. 김혜자는 지난해 찍은 ‘마더’로 LA비평가협회로부터 연기상을 받았다.
3. 남자 주연급들의 세대 교체 = 그동안 미완의 대기로만 머물던 원빈과 강동원이 흥행까지 책임질 수 있는 확실한 주연급으로 자리 잡았다. 원빈은 ‘아저씨’로, 강동원은 ‘의형제’와 ‘초능력자’로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특히 강동원은 지난해 개봉됐던 ‘전우치’까지 포함하면 혼자서 무려 1400만 가까운 관객을 쓸어담는 괴력을 발휘하고 조용히 입대해 눈길을 모았다.
4. 사회 고발 영화 봇물 = 어지러운 분위기 탓인가? 올해는 유독 한국 사회의 병폐를 지적하는 작품들이 많았다. 검경 비리를 그린 ‘부당거래’와 유아 성폭행 살인을 다룬 ‘돌이킬 수 없는’, 외국인 노동자 문제를 코믹하게 바라본 ‘방가?방가!’ 등이 사랑받았다. 잔인한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도 여럿 있었는데, 이병헌·최민식 주연의 ‘악마를 보았다’는 메이저 영화로는 처음으로 등급 보류 소동을 일으켰다.
5. 3D 시대 본격 진입 = ‘아바타’의 흥행 돌풍은 한국 영화계에도 3D란 화두를 던졌다. 영화진흥위원회과 학계를 중심으로 3D 기술 개발에 돌입했고, 몇몇 감독들은 3D로 영화를 만들거나 제작 계획을 발표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
배드 뉴스 5
1. 관객 수 감소 = 1∼11월 관객수는 1억3347만 명으로 지난해 1억3794만 명보다 조금 감소했다. 지난해처럼 ‘해운대’와 ‘국가대표’ 같은 빅히트작이 없어서다. 한국 영화 점유율도 46.2%로 지난해(51.2%)에 비해 5% 포인트 감소했다.
2. 여배우 실종 사태 = 60대 여배우들의 저력은 빛났지만, 한창 왕성하게 활동해야 할 20∼30대 여배우들의 활약은 상대적으로 부진했다. 전도연·김윤진·엄정화 등을 제외한 나머지 주연급 여배우들이 안방극장으로 무대를 옮기면서 여배우 위주의 작품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3. 표류했던 영화진흥위원회 = 영진위의 표류는 올해도 계속됐다. 아니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지난해 강한섭 위원장의 불명예 퇴진에 이어, 조희문 위원장도 독립영화 지원사업 외압 의혹으로 결국 해임됐다.
4. 양극화 현상 심화 = CJ엔터테인먼트·롯데엔터테인먼트·쇼박스㈜미디어플렉스 등 대기업 계열의 투자·배급 3사는 올해도 역시 영화계 전반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쳤다. 반면 군소 투자·배급사와 마이너 수입사들은 입지가 줄어들어 도산 위기를 겪는 등 살림살이가 나빠졌다.
5. 저 멀리 사라진 은막의 별들 = ‘겨울나그네’로 잘 알려진 1980년대 ‘멜로 거장’ 곽지균 감독이 5월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원조’ 만능 엔터테이너 트위스트 김(본명 김한섭)은 지병으로 11월 세상을 떠났고, 불세출의 희극배우 배삼룡은 2월 타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