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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대통령도 에누리 없는 ‘티파니’

[정일환의 이야기가 있는 명품]



1955년 미국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티파니 매장에 나타나 영부인에게 선물할 목걸이를 골랐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발견한 아이젠하워는 “대통령이니 할인해달라”고 요청했다. 티파니는 “링컨도 티파니의 값은 깎지 않았다”며 아이젠하워의 부탁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통령에게도 코웃음 치는 티파니의 자존심에는 배경이 있다. 티파니는 1885년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인장을 디자인했다. 미국을 상징하는 이 인장은 지금도 미국 달러 지폐의 뒷면에 선명히 인쇄돼 있고, 미국 정부의 모든 공식 서류에도 찍힌다.

이를테면 티파니에게 값을 깎아 달라는 것은 미국의 값을 깎겠다는 것과도 같다는 생각인 듯하다. 그것도 자국의 대통령이 그런 요청을 했으니 티파니 입장에서는 절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티파니는 우아함에 미국적인 위트가 가미된 독특한 디자인으로 오랜 세월 여성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특히 티파니 반지는 결혼을 앞둔 신부들의 로망이라 불릴 만큼 독보적인 인기를 누린다.

그런데 보석의 대명사인 티파니는 처음에는 보석과는 거리가 먼 회사였다. 19세기 뉴욕에서 창업된 티파니는 원래 학용품과 도자기 등 여러 종류의 물건을 팔던 잡화상 성격의 회사였다. 그런 티파니가 보석과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848년 프랑스 파리에서 일어난 ‘2월 혁명’과 관계가 있다.

티파니는 혁명으로 프랑스가 공화정으로 바뀌면서 루이 필립 국왕이 영국으로 망명하는 등 프랑스 왕가가 몰락하는 동안 그들이 지녔던 막대한 보석을 재빨리 사들였다.

티파니는 왕비의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비롯해 시장에 흘러나온 프랑스 왕가의 보석 69개 중 24개를 사들이며 일약 보석시장의 큰손으로 부상했다.

‘Made in France’라면 사족을 못 쓰는 미국인들이 프랑스 왕실 보석에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는 충분히 상상이 가능하다.

이 일을 계기로 티파니는 보석 디자이너를 고용해 자신만의 제품을 선보이며 보석계의 별로 떠올랐다. 이때부터 티파니는 현존하는 최대 크기의 옐로 다이아몬드로 만든 ‘버드 온 어 록’ 등을 내놓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명품 대열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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