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 정의’ 아름답고 소중한 가치이지만 그것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점점 힘든 시대이다.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시되고, 목적을 위해서라면 원칙이 무시되기 일쑤인 시대에 살고 있다. 홀로 정의를 부르짖으며 ‘무대포’로 돌진하는 방랑기사 돈키호테의 이야기는 불의의 시대에 더욱 빛난다.
연극 ‘돈키호테’가 명동극장에서 공연 중이다. 이 작품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극작가 빅토리앵 사르두가 희곡으로 각색한 것으로, 세르반테스의 원작 소설 중 ‘카데니오와 루신다, 돈 페르난도와 도로시아’의 이야기를 주요 소재로 삼았다.
책을 너무 많이 읽어 망상에 빠진 알론조 키하노는 스스로를 방랑의 기사 돈키호테라고 여기고 산초와 함께 방랑의 길을 떠난다. 풍차를 괴물로 여겨 싸움을 하는 등 망상증 환자와 같은 일도 벌이지만 정의를 지키고 이상을 꿈꾸는 정신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 희망을 준다.
카데니오와 루신다는 진실한 사랑을 나눈다. 이를 비웃듯 돈 페르난도는 카데니오로 변장하고 루신다에게 접근하여 결혼한다. 한편 도로시아는 남편인 돈 페르난도를 찾아다니며 자신과의 결혼을 증명하려고 한다.
복잡하게 얽힌 네 사람의 관계는 돈키호테의 굽히지 않는 이상에 대한 열정으로 도움을 받아 각자의 짝을 찾게 된다. 돈키호테 자신은 망상에 빠져 풍차와 결투를 했지만, 그의 정신과 가치는 진실한 사랑보다 가문의 명예를 선택한 연인들을 바른 길로 돌려놓는다.
세르반테스의 원작은 시대에 따라 코믹 소설, 진지한 소설, 사회 비판 소설로 평가받기도 했는데 양정웅 연출은 이상을 좇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를 희극적으로 풀어냈다. 돈키호테의 상상 속 여인 알돈자의 환상은 뮤지컬적인 판타지로 그려내고, 셰익스피어의 희극처럼 유쾌한 해피엔딩을 만들었다.
원작에서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망상에서 깨어나 집으로 돌아오지만, 작품에서는 끝까지 이상을 가지고 방랑을 이어 간다. 이 시대에는 현실을 직시하는 알론조 키하노 영감보다는 이상을 향해 돌진하는 돈키호테가 더 해야 할 일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망상가이자 고집을 굽히지 않는 이상주의자 돈키호테는 이순재, 한명구가 열연한다. 이상주의자를 쫓아다니는 현실주의자 산초는 박용수가 맡아 앳된 연기를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