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경기도 광명시의 4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2억원(금리 6%·20년 분할)을 대출받았다. 거치 기간을 5년으로 해서 2012년까지 매달 이자만 내면 된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소득이 늘지 않아 이자 갚기도 버거운 상황에서 앞으로는 거치 기간을 연장할 수 없다고 하니 막막하다. 기름값, 식료품비도 오르기만 하는데….”(40대 자영업자 J씨)
은행에 빚을 진 가계가 원금은 유예한 채 이자만 내는 ‘거치 기간’을 연장하는 관행이 사라질 전망이다. 원금을 갚지 않고 거치 기간만 연장해 이자만 갚을 경우 상환능력 초과로 인한 부실화 위험성에 노출된다는 지적 때문이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이 여전히 가라앉은 상황에서 거치 기간 연장이 중단될 경우 가계대출 연체가 늘고 부동산 시장 침체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24일 가계대출 구조 개선 차원에서 이 같은 방향으로 시중은행에 대한 행정지도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금감원에 따르면 은행들은 보통 3년이나 5년 안팎의 거치 기간을 두고 20∼30년 분할상환하는 방식으로 주택대출을 취급해왔다. 이에 따라 금감원은 향후 거치 기간이 만료되는 가계대출에 대해선 거치 기간 연장을 자제하도록 은행을 지도키로 했다.
금감원은 또 은행이 새로 대출상품을 판매할 경우에도 가급적 거치 기간이 없는 비거치식 대출상품을 대출희망자에게 추천하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거치 기간의 만기연장을 중단하고, 신규 대출에는 비거치식 상품의 판매를 늘려 부실화 위험이 있는 거치식 대출의 비중을 떨어뜨리겠다는 설명이다. 이와 함께 거치 기간도 은행이 자체적으로 단축하도록 지도할 예정이다.
앞서 금융위원회는 은행이 자체적으로 거치 기간의 총 허용 기간을 제한하도록 유도하고, 필요할 경우 은행과 관련 기관이 참여하는 태스크포스(TF)를 만들어 모범규준을 마련토록 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바 있다. 금감원은 실무검토를 거쳐 늦어도 내년 1분기 안에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행정지도 공문을 발송할 계획이다.
◆오히려 연체 늘고 부동산 침체 우려도
다만 일각에서는 거치 기간 연장이 중단될 경우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부동산시장이 활성화되지 않은 상태에서 거치 기간 연장이 중단된다면 대출자 입장에선 원리금 상환 부담이 급증할 수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거치 기간 연장 관행이 사라지면 오히려 가계대출 연체가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