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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바다의 길을 타고 온 탈해왕

[이상태의 역사 속 다문화人]

탈해왕(脫解王)은 신라 왕실의 박·석·김 3성(姓) 가운데 석(昔)씨의 첫 왕이다.

탈해왕은 일본 동북쪽으로 천 리 떨어진 인도의 다파나국(多婆那國) 출생이다. 다파나국의 왕이 여인국의 공주를 아내로 맞았는데 임신한 지 7년 만에 큰 알을 낳았으므로 왕이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 알을 버리게 했다. 공주는 알을 비단에 싸서 궤짝 속에 넣어 바다에 띄웠는데 신라의 아진포(阿珍浦)에 도착했다. 한 노파가 이 궤짝을 건져 보니 그 속에 옥동자가 있으므로 데려다 길렀다. 궤짝이 바다에 떠내려 왔을 때 까치들이 요란하게 울어서 발견하게 됐으므로 까치 ‘작(鵲)’자에서 새 ‘조(鳥)’자를 떼어 ‘석(昔)’자로 성을 삼고, 궤를 풀고 나왔다고 하여 이름을 탈해라고 했다.

탈해는 처음에 고기를 낚아 늙은 어머니를 봉양했는데, 한 번도 못마땅해 하는 기색이 없었다. 그 어머니가 말하기를 “너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며 골상이 매우 특이하니, 마땅히 학문에 힘써 공명을 세우라”라고 했다. 탈해는 이 말에 자극받아 오로지 학문에만 힘쓰게 됐다. 그에게 성취 의욕을 심어 준 어머니는 아진의선이다.

신라의 제2대왕 남해왕은 탈해가 영특하므로 자기 아들인 태자를 제쳐두고 탈해를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 탈해는 완강히 고사하면서 태자 노례에게 내기를 제의하기를 “무릇 덕 있는 자는 이가 많으니, 마땅히 이를 가지고 시험해 봅시다”하고, 떡을 물어 살펴보았다. 노례왕의 이가 많았으므로 먼저 왕위에 오르는데 이것은 노례왕이 연장자라는 뜻이다.

학계에서는 혁거세의 박씨 집단이 신라 6촌보다 상대적으로 앞선 문화를 가지고 경주에 들어와 이들을 통합시키고 후에 다시 울산 방면의 철산지를 장악하고 있던 석씨 집단과 결합해 신라를 발전시킨 것으로 본다. 석탈해는 인도에서 바다의 길을 타고 온 귀화인일 것이다. 석탈해 비는 월성원자력발전소 공원이 있는 경주시 양남면 나아리에 있는데 그곳이 아진포라고 여겨 세워진 비각이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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