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한 좌파 대통령’ 룰라 브라질 대통령이 지난해 마지막 날 퇴임했습니다. 한 여론조사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퇴임 3일 전 그의 지지율은 87%, ‘레임덕’이라는 용어마저 무색하게 할 기록적인 수치입니다.
1945년 브라질 북동부 지역에서 빈농의 아들로 출생한 룰라 대통령은 초등학교를 중퇴하고 구두닦이를 했으며, 15세에 금속공장 근로자로 사회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75년 철강노조 위원장에 당선된 후 노동자당을 결성한 그는 89년 이후 세 차례 대선에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습니다. 그러다가 2002년 대선에서 승리했고, 2006년 재선에 성공했습니다.
2003년 대통령 취임 당시 브라질은 300억 달러의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빚더미를 안고 있었습니다. 이때 그가 내놓은 정치적 결단은 ‘실용정치’였습니다. 진보진영으로부터 변절자 소리를 들으면서도 그는 보수진영을 끌어안았습니다. 우선 그는 10여 개의 정당을 규합, 연립내각을 구성해 정치적 안정을 꾀한 후 기업인들도 적극 영입했습니다. 그러고는 스킨십을 통한 소통의 정치를 폈습니다.
경제정책은 서민 살리기로 모였습니다.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과감한 투자 등을 골자로 한 경제성장촉진(PAC) 프로그램을 추진했고, 그 결과 8년간 연평균 7.5%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양적 성장만이 아닙니다. 저소득층에게 생계비를 지원하고 빈민에게는 식량을 무상공급했습니다. 이 같은 ‘빈곤퇴치 프로그램’으로 2900만 명을 기아에서 구출했으며, 중산층은 3000만 명 이상 늘어났습니다. 8년 만에 브라질은 세계 8위의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습니다.
대선 재출마 가능성에 대해 그는 “신은 한 사람에게 두 번 선물을 주지 않는다”면서 “대통령직 복귀를 바라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이자 사저가 있는 상파울루주 캄포시로 낙향,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가 일궈낸 브라질은 ‘정치적 양녀’로 불리는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에 의해 계승될 예정입니다.
룰라가 대통령에 취임한 2003년, 한국에서도 비슷한 성향의 노무현 정부가 출범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서민 출신 정치인으로, 재임시절 반대를 무릅쓰고 보수진영과 대연정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뒤 안타까운 최후를 맞았고, 룰라 대통령의 8년은 영광과 기적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이런 차이를 가져 왔을까요. /정운현(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