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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처용가 속 처용은 아랍인

[이상태의 역사 속 다문화인]

“경주 밝은 달에 밤늦도록 노닐다가 침실로 들어와 보니 다리가 넷이도다. 둘은 내 것인데 나머지 둘은 누구의 것인가? 본래 나의 것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오.”

위 향가는 신라 때부터 악신을 물리치는 데 많이 이용됐던 처용가다. 처용은 원래 동해 용왕의 아들이었는데, 용왕의 도움을 받은 헌강왕이 처용랑을 데리고 와 그에게 아름다운 여자를 아내로 삼게 하고 급간(級干)이란 관직도 내렸다. 그런데 그의 아내의 미모에 반한 역신(疫神)이 사람으로 변해 밤에 몰래 그 집에 들어가 동침했다.

이때 밖에서 돌아온 처용은 두 사람이 누워 있는 것을 보고도 화를 내지 않고 오히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깜짝 놀란 역신은 처용 앞에 꿇어앉아 “내가 큰 잘못을 저질렀으나 당신은 노여워하지 않으니 감동했습니다. 앞으로는 당신을 그린 가면만 봐도 그 문 안에 들어가지 않겠습니다”고 했다. 이후 사람들은 처용의 모습을 그린 부적을 문에 붙여 귀신을 물리쳤다. 이때 처용이 지어 부른 노래가 처용가(處容歌)이고, 그가 춘 춤이 처용무(處容舞)다.

8∼9세기 아라비아에서 중국을 거쳐 경주까지 해상무역로를 개척한 사라센 상인들은 거칠고 넓은 바다를 오가며 무역을 했다. 그들은 재산은 합법적으로 취득해야 하고 또 베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꺼이 베풀어야 한다’는 뜻을 가진 ‘자카트’, 즉 희사(喜捨)는 무슬림의 의무였다.

처용은 바로 그런 철학을 체득한 인물이었고, 바다를 닮은 마음을 지녔던 인물이었다. 가면에 나타난 아라비아인의 모습 등으로 미루어 처용랑은 신라에 내왕하던 아라비아 상인의 후예일 것으로 추측된다. /국제문화대학원대학교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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