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만 부르지 말고 가사를 음미하세요!”
새해를 한국에서 맞은 미국 브로드웨이의 스타 연출가 가브리엘 배리(52). 창작 뮤지컬 ‘천국의 눈물’(다음달 1일부터·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의 연출을 맡아 지난해 11월 27일 입국, 남산 기슭에 위치한 연습장 가득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채우고 있었다.
연습장 벽면에는 그가 직접 촬영해온 베트남의 아름다운 풍광과 뉴욕 카네기홀 사진들이 가득 붙어 있었다. 배우들에게 생생한 느낌을 전해주기 위해서다.
‘천국의 눈물’은 베트남전쟁을 배경으로 한 남자의 위대한 사랑을 다룬 로맨스 대작이다. 작가지망생인 한국 군인 준, 미군 대령 그레이슨, 클럽 여가수 린의 트라이앵글 러브가 주를 이룬다. 언뜻 ‘미스 사이공’을 연상케 한다.
“‘미스 사이공’이 사이공 함락 무렵의 이야기라면 ‘천국의 눈물’은 그로부터 8∼9년 전인 1960년대를 배경으로 해요. 가장 큰 차이는 이야기죠. 3각관계는 비슷하나 부수적 이야기가 다르며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마치 ‘집시’와 ‘오페라의 유령’을 두고 둘 다 극장 안 스토리라며 비교하는 것과 동일하죠.”
배리는 이 작품의 음악을 담당한 ‘지킬 앤 하이드’의 세계적인 작곡가 프랑크 와일드혼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됐다. 와일드혼과는 ‘카미유 클로델’ ‘카르멘’ 등을 함께 작업했다.
“와일드혼의 음악은 매우 서정적이고 감정이 풍부해요. 드문 음악이죠. 이번 노래 역시 아시아·프랑스 선율이 흐르는 것과 동시에 현대적 느낌도 물씬 납니다.”
프로덕션 디자인에서도 꽤 많은 공을 들였다. 빛과 그림자를 통한 심리묘사, 배우들에 의한 그림자 놀이와 영상 활용, 생생하고 다채로운 컬러가 관람 포인트다. 또 20여 명 앙상블의 연극적 장치를 통한 전투장면은 전쟁의 공포, 상실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한국 배우들과 6주째 땀방울을 뿌리고 있다. 오디션 과정부터 참여한 배리는 배우들의 재능이 뛰어나고, 열정과 스마트한 모습이 인상적이라고 덧붙였다.
20년이 넘게 배우로 활동하다가 자신의 캐릭터에만 몰입하기보다 무대 전체를 바라보는 점에 흥미를 느껴 연출에 입문했다. 그 후 ‘더 와일드 파티’로 칼로웨이상, ‘스위니 토드’로 코네티컷 비평가협회 최우수 작품상·연출상 등을 받았다. 평단은 ‘음악과 드라마의 하모니’ ‘따뜻한 감성을 잃지 않는 연출가’라는 찬사를 안겨줬다.
배우 출신이라 배우 입장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지 않을까. 더욱이 감독의 예술인 영화와 달리 공연은 배우의 예술이지 않은가.
“어느 순간, 연출자는 뒤로 물러나서 배우들이 주도적으로 하게끔 만들어줘야 해요. 배우의 직관에 따라야 재밌는 공연이 탄생하죠. 한국 배우들은 창조적이긴 한데 허락받으려 하는 성향이 있어요. 전 ‘느끼는 대로 일단 한번 해보라’라고 말하죠. 아이디어는 몸으로 표현해보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거든요.”
세계 초연인 ‘천국의 눈물’은 한국 공연 후 향후 2년 내에 브로드웨이 입성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사랑이라는 보편적인 주제에 국가 간 관계가 드러나는 전쟁을 소재로 하기에 전 세계 관객에게 어필할 잠재력이 있어요. 무엇보다 뛰어난 대본, 음악, 캐릭터가 존재하므로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