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주말드라마 ‘시크릿 가든’이 대중문화를 읽는 코드로 자리매김했다. 출판계와 패션계를 강타한 데 이어 최근엔 드라마 속 에피소드가 문화현상으로까지 둔갑하는 중이다.
드라마 신드롬은 제작진(연출·작가)과 배우라는 두 축이 특정 상황에서 시너지를 이룰 때 탄생하곤 한다. 이 드라마가 시작한 지난해 11월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과 한반도를 둘러싼 냉전 분위기 등 국내외 이슈가 잇따라 터져나오던 어수선한 때였다.
직장인 이미혜(32)씨는 “복잡한 정세와 연말의 울적한 기분으로부터 도망치듯 드라마에 빠져들었다”고 말했다. 현실을 정상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왜곡하려는 증상을 정신의학과에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증후군’이라 부른다.
루이스 캐럴의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드라마를 정의하는 중요한 잣대다. 김은숙 작가가 제작발표회에서 동화 속 등장인물의 속성과 설정을 모티브로 했다고 밝혔듯 드라마는 현실보다 판타지를, 이성보다 감성적 해석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시크릿 가든’은 다양한 해석을 양산하며 마니아층을 두텁게 형성하고 있다.
◆재벌 표현에도 긍정적 변화
재벌을 표현하는 장치도 진화했다. 으리으리한 집과 외제차, 복잡한 출생의 비밀로 소비되던 재벌은 이탈리아 장인이 수작업으로 완성한 트레이닝복을 입고,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며, 한쪽 벽을 통째로 채워 넣은 서가의 책을 읽는 이미지로 어필한다.
자연스레 출판계는 특수를 맞았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비룡소)는 8일 기준 10만 부를 넘어섰고, 대사와 PPL(제품 간접광고)로 등장한 시집들(‘아무렇지도 않게 맑은 날’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우연에 기댈 때도 있었다’ ‘나의 침울한, 소중한 이여’ ‘너는 잘못 날아왔다’)은 불티나게 팔려나가고 있다. 극 중 서가에는 민음사의 책 3000권과 문학과지성사의 책들이 협찬됐다.
시청자들은 “그게 최선입니까? 확실해요?” “이탈리아 장인이 한 땀 한 땀 손으로 만든” 등의 대사를 일상에서 활용하기에 바쁘다. 스타들도 예외는 아니다. 이미 현빈의 트레이닝 복은 많은 스타가 앞다퉈 패러디했으며 최근 소녀가수 아이유가 즐겨 입는 레트로 걸리시(Retro Girlish) 룩은 다른 세상에서 온 듯한 패션이란 뜻에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룩’으로 불린다. 또 현빈이 말로 문자를 보내는 장면으로 인해 관련 스마트폰 제품과 앱이 인기다.
출판사 비룡소의 이지은 팀장은 “전형성을 탈피한 남성·여성 캐릭의 출연은 가장 반길만한 부분”이라며 “어디로 튈지 모르는 김주원(현빈)의 비정형성과 원더랜드를 두려워 하지 않는 길라임(하지원)의 도전이 드라마가 던지는 문화적 화두인 것 같다”고 소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