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내 소문난 패셔니스트인 박형규(36)씨. 스타일을 구긴다며 쳐다보지도 않았던 두툼한 파카 점퍼를 지난 주말 구입했다. 체감기온이 영하 20도인 날씨를 뚫고 출퇴근하기에는 순모 코트 정장만으로는 부족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달 내내 ‘시베리아 한파’가 계속될 것이란 소식에 구두를 대신할 등산화도 마련했다. 시내 곳곳이 빙판길인 점을 감안하면 현명한 선택이라고 자위한다.
최근 ‘빙하기’가 왔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로 유례없는 강추위가 한 달 이상 이어지면서 추위를 이기기 위한 직장인들의 묘안이 쏟아지고 있다.
5분만 걸어도 온몸이 얼어붙어 정장이나 코트 대신 오리털 파카, 거위털 패딩 점퍼 등으로 중무장한 직장인들이 출근길에 대거 등장했다. 눈 소식만 들리면 구두 대신 등산화를 착용한 ‘등산화족’도 흔히 목격할 수 있게 됐다.
서울기온이 영하 16도로 곤두박질친 17일,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성재홍(29)씨는 “강추위가 계속되자 코트를 고집하던 동료들도 이젠 모두 오리털 파카로 바꿔 입었다”며 “외근이라도 있는 날에는 털모자·목도리·장갑·귀마개 등 월동장비를 철저히 챙긴다”고 말했다.
사무실 풍경도 달라졌다. 여성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스타킹 위에 수면양말을 덧신고 일하는 이들까지 생겼다. 마포에서 근무하는 서현희(33)씨는 “발이 차서 솜털 실내화를 샀는데, 요즘은 그것만으로 부족해 윗사람이 안 볼 땐 살짝 양반다리로 포개 일한다”며 “난방이 아직 훈훈하지 않은 오전에는 털모자를 쓰고 일하는 직원까지 있다”고 귀띔했다.
을지로에서 일하는 대기업 직장인 이유리(31)씨는 요즘 발전용 온열기가 필수품이다. 출근해서 퇴근하기까지 따뜻한 온열기 속에 발을 쏙 집어넣은 채 근무한다. 이씨는 “파스처럼 붙이는 핫팩도 공동구매해 직원들끼리 나눠 쓰고 있다”고 전했다.
외근도 가급적 줄이는 분위기다. 서울 광화문의 이경희(30)씨는 “직접 거래처 담당자를 만나는 대신 전화나 메신저, 카카오 톡(스마트폰 어플)을 통해 업무를 조정하는 일이 늘었다”고 말했다.
추운 날씨 때문에 구내식당을 이용하는 직장인이 늘면서 점심시간이면 북적이던 식당가도 한산해지고 있다. 광화문의 한 오피스텔에서 근무하는 최홍석(37)씨는 “점심시간 식당을 찾는 직장인들이 기존의 20%밖에 안 되는 것 같다”며 “대신 건물 지하 식당가가 사람들로 메어 터진다”고 말했다.
아예 점심시간을 한 시간 앞당긴 기업도 있다. 전열기구 사용이 급증하면서 전력 사용량이 연일 최고치를 기록하자 한국전력 계열사들은 물론 일진그룹 등도 최근 점심시간을 오전 11시로 정했다. 한전 관계자는 “날씨가 추워지는 겨울철에는 음식점 등에서 점심시간에 집중적으로 난방을 하면서 전력수요가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