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씨어터 창' 이끄는 김남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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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닭을 머리에 쓰고 무대를 휘젓던 백조는 결국 검은 재앙을 뒤집어 쓰고 힘겹게 사그라졌다. 그 사이 객석에선 낄낄거리기도 했고 화들짝 놀라기도 했지만 결국 비장해졌다. 그리고 마음 한 켠 작은 희망을 보았다.
지난 19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오른 ‘미친 백조의 호수Ⅰ,Ⅱ’는 무용에 대한 선입견을 거부했다. 현대무용가 김남진(42)의 ‘댄스시어터 창’이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해 마련한 연작 공연의 첫 작품이었다. 순수예술에 드리운 사회적 메시지는 강렬했다.
◆몇 년 뒤 이미지 떠오를 무용
무대에서 막 내려온 김씨에게 물었다. -신문으로 치면 문화면이 아니라 마치 사회면을 보는 것 같다. 낯설다. “한국이 현대무용의 불모지라서다. 막연히 현대무용은 추상적이고 어렵워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다. 그래서 극장 들어가길 겁낸다. 난해한 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무식하다고 보지 않을까, 머뭇거린다.”
-실제 현대무용이 그렇지 않은가. “아니다. 현대무용은 발레처럼 답이 나오는 예술이 아니다. 관객이 느끼는 게 정답이다. 현대무용이 좀더 대중화된 유럽에선 관객이 주관을 갖고 객석에서 직접 해석하고 안무가와 대화한다.”
-순수예술에 사회적 메시지라…. “내가 활동한 프랑스와 벨기에에는 사회성 짙은 작품이 많다. 무대에서 성조기를 불태우기도 한다. 처음엔 ‘춤으로 이런 충격을 줄 수도 있구나’ 충격받았고, 그런 작품을 하고 싶었다. 내가 만들고 싶은 현대무용은 한 이미지가 계속 생각나고 몇 년이 지나도 떠오를 수 있는 작품이다.”
◆사회성 짙은 현대무용 고집
1995년 맨몸으로 프랑스로 건너간 김씨는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국립현대무용단에 입단해 4년간 춤을 췄다. 이어 벨기에 세 드 라 베 무용단에서 2006년까지 왕성한 활동을 하다 고국으로 돌아왔다. 발레 같은 고전무용과 달리 현대무용에선 ‘해외파 1세대’로 꼽힌다.
귀국 후 그는 곧바로 광대 ‘창(倡)’을 돋을새김한 무용단을 만들어 사회성 짙은 현대무용을 쏟아냈다. 노숙자 문제를 다룬 2006년 작 ‘스토리 오브 비’와 자살의 심각성을 표현한 2007년 작 ‘햄릿’, 장애인 형제의 이야기를 담은 2008년 작 ‘브라더’ 등으로 안무가로서의 필모그래프를 쌓았다.
이번 환경 연작에 앞서 초연한 ‘기다리는 사람들Ⅱ’는 남북 분단과 통일 문제를 다뤘고, 지난해엔 국회를 무대로 한 정치 문제를 다룬 ‘기다리는 사람들Ⅰ’으로 주목받았다. ‘브라더’에서 처음 공연하며 연을 맺은 장애인 행위예술가 강성국(30)는 이번 ‘미친 백조의 호수’의 2부를 장식했다.
◆못 가진 이들 이야기 그릴 터
“의미 없는 움직임은 재미가 없다. 내가 모르는 움직임이라면 객석에선 더 이해할 수 없지 않겠는가.”
그는 현대무용이 관객 좀더 넓게 대중과 숨쉬었으면 한다고 했다. 그래서 갈 길이 멀다. “현대무용계에도 표본이 될 수 있는 스타가 나와야 한다. 교수가 되기 위한 이력서에 한 줄 넣기 위해 의미 없는 무대에 서는 것도 문제다. 또 대관 위주의 공연 시스템도 바뀌어야 한다.”
작품과 의견은 강렬했지만 김씨의 말투는 무척 공손했고 자세는 부드러웠다. 그러면서 “부유한 사람들을 위해 춤을 추고 싶지 않다. 사회적 문제를 공유하고 싶다. 못가진 자의 그런 것을 이야기 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