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설 연휴 극장가의 가장 재미난 볼거리는 영화계의 소문난 ‘절친’ 강우석 감독과 이준익 감독이 ‘글러브’와 ‘평양성’으로 맞붙는 흥행 대결이다. ‘실미도’와 ‘왕의 남자’로 1000만 관객 시대를 열었던 ‘흥행 제조기’들의 한판 승부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투자자와 연출자로, 바둑 친구로 20년 넘게 우정을 이어 가고 있는 둘은 세간의 이 같은 시선에 “우리 사이에 경쟁은 없다”며 미리 약속이나 한 듯이 입을 모았다.
마음 정화시키는 착한 작품
지난 20일 먼저 개봉된 ‘글러브’는 25일까지 전국에서 66만 관객을 불러모아 순항에 돌입했다. 청각장애인들로 구성된 충주 성심학교 야구부의 인간 승리 실화에 관객들의 뜨거운 반응과 평단의 호평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지난해 ‘이끼’를 찍으면서 조금 황폐해졌던 마음이 ‘글러브’를 끝내고 말끔하게 정화됐습니다. 흥행 스코어도 중요하지만, 관객들이 이 영화의 진심을 이해해주는 것 같아 정말 기쁘죠.”
27일 개봉될 ‘평양성’의 이 감독과 얽힌 흥미로운 비화를 들려줬다. 원래 ‘왕의 남자’를 자신이 연출하려 했었다는 것이다. “이 감독이 ‘황산벌’과 ‘왕의 남자’의 투자자를 찾지 못해 제게 왔죠. 그런데 ‘황산벌’은 이 감독이 연출해야 할 작품으로 보여 ‘네가 평소 말하는 것처럼 찍으면 성공할 것’이라고 권유한 반면, ‘왕의 남자’는 솔직히 탐이 났었습니다. 인연이 닿지 않아 두 편 모두 친구가 메가폰을 잡긴 했지만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던가. 강 감독도 차기작으로 이 감독처럼 사극을 준비 중이다. 조선시대 반상의 구분을 통해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하는 내용으로, 이르면 다음주 내로 연출 여부를 결심할 생각이다. “‘한반도’ 때 명성왕후가 등장하는 장면을 촬영하면서 사극에 대한 강한 매력을 느꼈습니다. ‘이준익표 사극’과 뭔가 다른 게 나오지 않겠어요? 하하하.”
감독은 흥행·영화는 감동 ‘기본’
이 감독은 ‘평양성’의 개봉을 앞두고 배수의 진을 쳤다. 흥행에 실패하면 미련 없이 감독 의자를 내놓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즐거운 인생’부터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까지 손익분기점을 맞추지 못했어요. 상업영화를 만드는 감독의 기본 덕목을 지키지 못한 것이죠. 그래서 만약 이 영화가 안 되면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고 뒤로 물러서려 해요.”
강 감독과 더불어 몇 안 되는 중견 연출자로 살아가는 어려움도 토로했다. 영화를 문화적 가치로 평가하는 풍토가 점차 사라지면서, 덩달아 감독들의 조로화 현상도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다. 모든 작품을 관객 수로만 접근하다 보니 오랜 인생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뚝배기 같은 영화들이 줄어들고, 잔인한 묘사와 표현으로 도배된 영화들이 대거 등장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친구가 사극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에 반색하는 눈치다. 참으로 어려운 결심을 했지만, 이제라도 늦지 않아 다행이라는 귀띔이다. “강 감독이나 나나 따뜻한 시선으로 감정에 호소하는 영화를 무척 선호하는 편입니다. 작품 보는 눈이 비슷하다고 할까요? 전 강 감독이 사극도 잘 만들어낼 것으로 믿어요. 그 전에 ‘평양성’과 ‘글러브’가 모두 성공해야겠지만요.”
사진/서승희·최현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