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극은 사극인데, 사극이 아니다? 27일 개봉될 ‘평양성’과 ‘조선명탐정:각시투구꽃의 비밀’(이하 ‘조선명탐정)은 이른바 ‘퓨전 사극’에 해당된다. 사극의 두꺼운 외피를 둘렀지만, 줄거리는 그 어느 현대물보다 경쾌하고 발랄하며 모양새는 다소 경박하기까지(?) 하다. 고구려와 나당연합군의 마지막 전투를 다룬 ‘평양성’은 2003년 공개됐던 전편 ‘황산벌’처럼 역사 읽기로 오늘의 현실을 풍자하고 비판한다. ‘조선명탐정…’은 코미디와 액션, 추리를 양념으로 얹은 조선판 ‘셜록 홈즈’. 두 작품이 벌일 흥행 대결은 올 설 연휴 극장가의 메인 이벤트다. /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권력싸움 틈 실속챙기는 거시기 ‘통쾌’
나당연합군의 공격으로 고구려는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다. 설상가상으로 맹장 연개소문까지 숨을 거두고, 아버지의 다혈질적인 성격을 쏙 빼닮은 둘째아들 남건(류승룡)이 후계자로 나서지만, 불만을 가진 첫째 남생(윤제문)은 당나라에 투항한다.
당나라는 신라가 선봉에 설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지만, 호호백발이 된 능구렁이 야심가 김유신(정진영)은 어찌된 연유인지 자꾸만 뒤로 뺀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권력자가 아닌 민중에 의해 굴러간다는 진리를 새삼 강조한다. 단란한 귀향 살이를 꿈꾸며 싸움을 반대하는 거시기(이문식)와 논 30마지기를 얻고 재징집을 피하기 위해 특공대를 자청하는 문디(이광수)는 이 영화의 진짜 주인공이며 마지막 승자다.
반면 끝까지 결사항전을 부르짖다가 허무하게 숨져가는 남건과 당나라의 간교한 계략에 속아 넘어가는 남생은 숨은 패배자가 될 수밖에 없다. ‘왕의 남자’를 시작으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까지 패자의 미학을 존중해온 이준익 감독의 일관된 시선이 느껴진다.
마당놀이처럼 열린 공간에서 제 몫을 해내는 배우들의 차진 연기 호흡은 기발한 전쟁신과 더불어 가장 큰 볼거리. 그러나 등장인물 모두에게 비중이 고루 나눠지다 보니 초점이 다소 분산되면서 이야기의 흐름 역시 좀처럼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는 게 약간의 흠이다. 12세 이상 관람가.
‘셜록+인디애나’ 웃음보다 스토리
정조는 조선 제일의 명탐정(김명민)에게 공납 비리 사건의 수사를 지시한다. 명탐정은 수사에 돌입한 첫날부터 자객을 만나 살해 위협을 받지만 개장수 서필(오달수)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구한다. 단짝이 된 명탐정과 서필은 사건의 결정적인 단서인 각시투구꽃을 찾아 음모의 중심으로 한걸음 다가서려 하지만 자꾸만 벽에 부닥친다. 어렵게 찾아낸 사건의 배후에는 조선의 상단을 주름잡는 여걸 한객주(한지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작가 김탁환의 베스트셀러 ‘열녀문의 비밀’을 스크린에 옮긴 이 작품은 ‘셜록 홈즈’에 ‘인디애나 존스’를 맛깔나게 버무렸다. 자기 자랑에 능하지만 결코 밉지 않고, 매번 삼십육계 줄행랑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일전을 불사하는 주인공의 모습은 현대적인 감각의 영웅이다.
유려하면서도 박진감이 넘치는 카메라 워크는 가장 큰 장점이다. 한 화면에서 과거와 현재를 함께 보여주는 방식으로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를 동시에 제공한다. 한마디로 ‘때깔’이 좋다.
진지함과 코믹함을 수시로 넘나든 시도는 절반의 성공으로 그친 느낌이다. 캐릭터의 상반된 대사와 행동을 하나의 프레임에서 연이어 보여주기보다는, 커트와 커트로 연결하는 게 오히려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몇몇 특정 대목에서는 연출자와 배우 모두 웃기려고 작정한 것 같지만, 기대만큼 ‘빵 터지지’ 않는 이유다. 전체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