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마다 화제몰이다. 골반을 흔드는 섹시 댄스나, 구성진 입담 때문이 아니다. 눈물을 쏟는 장면은 화제의 동영상으로 주목받았고, 지난 설 연휴엔 ‘운동돌’로 안방극장을 들썩이게 했다. 공통 분모는 승부욕과 근성, 그리고 열정이다. 걸그룹 에프엑스의 멤버 루나(18)가 이번엔 뮤지컬에 도전한다. “너무 행복해서”“더 잘하고 싶어서” 눈물이 난다는 열여덟 아이돌 스타의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제시카 거쳐간 엘 우즈 역
뮤지컬 ‘금발이 너무해’(다음달 20일까지·삼성동 코엑스 아티움)의 첫 공연을 사흘 앞둔 지난달 31일 대학로의 한 연습실. 아무도 없는 텅 빈 공간이 그가 몰고온 밝은 기운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SM타운의 일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라 피곤한 기색을 채 씻어내지 못한 듯했지만 목소리는 쩌렁쩌렁했고, 까르르 웃음보 터지기가 일쑤였다.
“주인공을 맡게 됐다는 얘길 들었을 때는 지금보다 몇 배는 더 힘이 넘쳤어요. (웃음) 루나라는 이름으로 뮤지컬 배우가 될 줄은 몰랐거든요. 처음에 대본을 봤을 땐 ‘이걸 다 외우는 것 불가능해’라고 했는데, 암기가 아니라 이해를 하니 쏙쏙 머리에 입력되더라고요.”
그가 맡은 역은 여주인공 엘 우즈. 이하늬·김지우·바다 그리고 같은 소속사 선배 가수인 소녀시대 제시카가 거쳐간 인물이다. 이번 시즌에서 김지우·바다와 함께 엘 우즈 역에 트리플 캐스팅됐다. 상큼하기로는 루나의 엘 우즈를 따라갈 자가 없겠지만, 베테랑 뮤지컬 배우가 된 언니들의 뒤를 잇는 부담도 만만치 않다.
“지우 언니, 바다 언니 공연은 한 여덟 번 정도 본 것 같아요. 대사 톤이나 표정 연기, 몸짓 모두 외울 정도라니까요. 신기한 건 볼수록 따라하게 되는 게 아니라, 저만의 엘 우즈를 만들어 가고 있다는 거에요. 제시카 언니도 ‘원래 네 모습을 많이 보여주면 돼’라고 조언을 해 줬죠.”
설 연휴 금메달 딴 '운동돌'
이야기하는 내내 또래 여자 아이돌 스타에게선 느낄 수 없던 기운이 넘실댔다. 뮤지컬에 도전하는 설렘, 가수 활동을 병행하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는 모든 과정에 진심과 열정이 뚝뚝 묻어났다.
“뭔가를 정말 잘하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뜨거워져요. 그 사람을 질투하는 게 아니라 ‘더 좋은 환경에 있으면서 이것 밖에 못하는 거야?’라고 되묻게 되거든요. 예전에 ‘스타킹’에서 눈물을 보였던 것도 같은 이유였어요. 존경심, 반성, 책임감이 동시에 차올랐었거든요.”
그의 이런 근성은 5일 방송된 설 특집 MBC ‘아이돌 육상·수영 선수권 대회’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쟁쟁한 실력파 ‘운동돌’을 제치고 지난 추석 특집에 이어 높이뛰기 부문 우승을 차지,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솔로 가수 루나가 아니라 에프엑스의 멤버 루나라는 게 모든 힘의 원동력 같아요. 힘들 때 가족을 생각하면서 기운을 차리는 것처럼 제가 하는 행동과 말, 노래와 연기 모든 게 팀에 어떤 영향을 줄지 늘 생각하게 되거든요. 제가 뭔가를 잘해내면 자랑스러워 해 줄 사람이 남들보다 훨씬 많은 것도요.”
가창력과 춤 실력을 일찌감치 인정받은 만큼 그의 첫 뮤지컬에 기대를 거는 이들도 많다. 올 봄 선보일 예정이라는 새 앨범 작업과 병행하는 바쁜 스케줄에도 ‘나 홀로 보충 연습’을 자처하는 이유다.
“엄마, 아빠, 오빠, 쌍둥이 언니, 우리 멤버들 모두 초대해야죠. 공연 후반에 접어들면 한 번 씩 더 와서 봐달라고 할래요. 제가 노력하고 시간을 쏟는 만큼 훨씬 더 나아질 거라는 걸 전 잘 알거든요.” /전수미기자 jun@metroseoul.co.kr·디자인/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