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병역거부자 지원활동을 하면서도 ‘입대’는 생각했었죠. 하지만 차츰 ‘사람을 죽일 수 없다’는 그들 생각이 나와 다를 게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1년6개월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낸 임재성(31)씨는 밝았다. 그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로서의 경험과 생각을 담담히 조리 있게 말했다. 그는 종교적 이유가 아닌 평화에 대한 신념으로 감옥행을 택했다. 고려대 법학과 졸업을 앞두고 결심을 굳히기까지 2년이 가장 힘들었다. ‘남다른 길’을 간 외동아들 탓에 부모님은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남들처럼 사시도 안 보고, 제 발로 감옥 간다는데 어떠셨겠어요. 아버지는 이해는 하지만 용납할 수 없다고 하셨고, 어머니는 몰래 병무청에 입영연기 신청까지 하셨죠.”
2006년 5월 출소 뒤 서울대 사회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평화학을 연구 중인 그는 최근 석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삼켜야 했던 평화의 언어’를 펴냈다. 책에는 병역거부 운동의 전반이 담겼다.
“세금 탈루자는 정치인이 되지만, 병역기피자는 못 될 정도로 우리 사회는 병역이 도덕화돼 있고 합리적 토론은 불가능해요. 우리가 상상력을 제거당해서 그렇지, ‘다 군대 가자. 똑같이 고생하자’는 건 해결책이 아닙니다. 신체적으로 총을 들 수 없는 사람이 있듯 정신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정하자는 겁니다.”
그는 대체복무제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대체복무제는 전 정권에서 추진했으나 이명박 정권 들어 무산됐다.
“반론으로 북한의 현실적 군사 위험 등이 제기되는데요. 그렇다면 왜 병력 자원을 전·의경, 의무소방대, 병역특례업체로 돌리나요. 이건 사실상 대체복무예요. 절차적 민주주의가 수립된 나라 중에 대체복무제를 도입하지 않은 건 우리와 터키뿐입니다. 매년 1000여 명이 병역거부로 감옥에 갑니다. 전과자를 양산하면서 사회적 손실을 지속할 이유가 없어요.”
그에게 병역거부는 평화운동이자 군사주의에 대한 성찰이기도 하다. 정당성 없는 전쟁, 부당한 명령에 대해 강요되는 복종 등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병역거부가 어떻게 평화의 언어가 되는지는 아직 생소하죠. 그런데 광주항쟁이나 4·3사건처럼 국가 폭력이 악용된 적도 있어요. 탈맥락적 비폭력이나 낭만적 평화운동을 하자는 게 아니라, 군대라는 폭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냉철히 보자는 겁니다. 군사적 방식만이 해결책은 아니라는 걸 얘기해보자는 거죠.”
그의 박사학위 논문 주제도 징병제다. 국내 선행연구가 별로 없어 쉽지는 않다.
“내가 무슨 영광을 누리자고 이러고 사나 싶기도 해요. 그런데 소수의 연구자를 위한 연구는 그 다음의 연구를 위해 참 중요합니다. 제가 그걸 하고 싶어요. 책이 100부도 안 팔릴지언정.”
/장관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