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무쌍한 캐릭터로 스크린을 활보하는 배우 박희순(41)이 데뷔 후 처음으로 사극에 몸을 담았다. 조선 광해군 11년을 배경으로 청나라와의 전쟁 중 만주벌판에 고립된 세 병사의 생존 대립을 그린 영화 ‘혈투’(24일 개봉)로 올해 첫인사를 전한다.
몸싸움보다 치열한 심리전
그가 연기한 인물은 조선 군장 헌명이다. 그와 또 한 명의 패잔병 도영(진구), 그리고 탈영병 두수(고창석)는 빈 객잔에 모이게 되고 이들이 몰랐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치열한 심리전과 몸싸움을 벌이는 내용이다.
“대규모 전투신이나 왕의 이야기에 집중하는 기존의 방식을 답습하지 않는 사극이라는 데 끌렸어요. 시대적 배경을 빌려왔을 뿐이지 현대로 끌어와도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에요. 그 당시 당파 싸움의 희생양들이 객잔 안에서 또다시 편을 갈라 싸우는 이중구조도 흥미롭죠.”
대표적인 다작 배우이지만 그동안 사극을 하지 않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아껴둔 장르죠. 관습적인 것 말고 새로운 작품을 기다렸어요. 이번 작품이 그랬고요. 극단 목화에 있을 때는 사극 연극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영화에서는 지난 경험들을 어떻게 활용할까 궁금했는데 이번에 마음껏 풀어냈어요.”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언어였다. 심리 대결은 대사에 녹아 나오기 때문에 다양한 감정과 느낌을 정확히 풀어내야 했다.
“진구는 세도가의 자식이라 자유분방해요. 그래서 고어와 현대어, 시쳇말까지 하고 싶은 대로 말하죠. 고창석씨는 평민이라 사투리만 쓰고요. 저는 진정한 양반이 되고자 하는 야망이 있는 인물로 줄곧 하오체로 된 고어만 쓰니 혼자 답답했죠.”
말투만 신경 쓰기도 힘든데 긴 대사를 퍼부으면서 액션까지 해야 하니 몇 배의 고충이 따랐다.
“감정이 최고조에 이르면 ‘개싸움’이 돼요. 흔히 보는 미리 합을 맞춘 검술이 아닌 매우 사실적인 싸움이죠. 실제 눈 대신 흰소금과 하얀 모래까지 뿌려놔 나중에는 땀과 범벅이 돼 눈은 떠지지 않고, 온몸은 소금에 절어 파김치가 됐어요.”
첫 사극 ‘혈투’에 이어 또 사극에 출연한다. 김탁환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 ‘가비’에서 고종황제 역을 맡아 다음달 촬영에 들어간다.
“고종에게 커피를 주는 연인과의 미묘한 관계를 그린 영화예요. 인간적인 외로움과 고통이 녹아 있는 캐릭터인데 고종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꿔보고 싶은 호기심에 선택하게 됐죠.”
하정우·장혁과 함께 검사 역을 맡아 영화 ‘의뢰인’ 촬영에도 한창이다. 또 그가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작품을 물색 중이다.
“조연 때 오히려 작품을 적게 했어요. 워낙 깡패 역할만 맡다보니까요. 주·조연으로 올라서면서 선택 폭이 넓어졌고 하고 싶은 작품도 많아졌어요. 쉴 때보다 촬영할 때 오히려 에너지가 생기거든요. 올해 안에 제대로 된 멜로 한 번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