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시봉’을 키워드로 한 복고 열풍이 일상을 맹렬히 파고드는 중이다.
MBC ‘놀러와’에서 조영남·윤형주·송창식·김세환·이장희 등 과거‘세시봉’ 멤버들이 들려준 감미로운 통기타 음악으로 불붙은 최근의 복고바람은 새로운 문화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학림다방·가미분식 등 새롭게 조명
옛 것을 찾아 헤매는 분위기는 서울 청계천의 헌책거리에서 감지된다. 전공 서적을 찾는 교수와 대학생, 문인으로 가득했던 이곳이 얼마 전부터 다시 붐비기 시작했다. 예전만큼 호황은 아니지만, 높은 등록금에 신음하는 대학생들이 싼 가격으로 ‘득템’하고자 청계천을 오가는 횟수가 최근 부쩍 늘어나고 있다.
부모가 즐겨 다니던 대학가 인근 추억의 명소들도 덩달아 바빠지기 시작했다. 1956년 문을 열어 반세기의 전통을 자랑하는 서울 대학로 학림다방은 1970~80년대 격동의 시기를 보냈던 50~60대부터 자식뻘인 20~30대가 어울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서울 신촌 이화여대 앞 수많은 커피 전문점과 베이커리 사이에서 터줏대감으로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가미분식은 모녀가 함께 찾는 명소로 유명하다. 30여 년 전 이대를 졸업한 우은희(54) 씨는 “같은 대학 후배가 된 딸에게 가장 먼저 이 곳을 알려줬다”며 “오래된 가게이지만 딸도 나만큼이나 그곳을 좋아한다. 추억을 공유하며 세대차를 줄일 수 있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고 말했다.
매일 저녁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뒷골목에 자리잡은 ‘봄’ ‘여름’ ‘가을’ ‘겨울’등 통기타 선율이 흐르는 라이브 카페에는 20~50대의 직장인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지난날의 향수로 각박한 살림살이 잊어
공연가에서 7080 세대의 감수성을 자극했던 해외 중견 뮤지션의 콘서트는 연일 호황이다.
기타의 대가 에릭 클랩턴과 산타나의 내한공연이 성공리에 끝났고, 15일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열릴 이글스의 공연 티켓은 ‘호텔 캘리포니아’로 가고 싶어하는 중년 팬들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일찌감치 매진됐다.
이들의 무대는 국내 신구 뮤지션들을 하나로 결집하는 계기도 제공하고 있다. 9일 산타나의 공연에는 송창식·윤형주·김세환 등과 크라잉넛의 한경록, 스키조의 주성민 등 다양한 연령대의 가수들이 모여 눈길을 끌었다.
통기타의 판매량도 늘었다. 10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최근 통기타의 판매량이 평소보다 최고 2배로 증가했다. 현대백화점은 지난달 7일부터 한 달 간 통기타 매출액이 지난해보다 53% 증가했고 현대H몰의 기타 판매량도 45% 증가했다.
복고 트렌드는 유가 인상과 물가 급등 등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경기 불황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88만원 세대’는 힘든 와중에도 ‘성공 신화’를 이뤄낸 윗세대를 돌아보며 그 시절의 낭만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40~50대는 고생 끝에 일군 경제력을 앞세워 젊은 층에게 빼앗기다시피한 ‘문화 영토’를 되찾는 동시에, 지난날의 향수로 각박한 살림살이를 잊고자 한다.
대중문화 평론가 임진모 씨는 “대중 문화계의 복고 바람은 언제나 있어 왔지만, 최근의 ‘세시봉’ 열풍은 각 세대가 자기들의 음악을 찾아나서고 있는 모습으로 여겨진다”며 “경기가 어려울 때 추억을 찾는 현상으로도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 조성준기자, 손민지 대학생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