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부터 김승우(42)는 독한 마음으로 금연에 도전중이다. 금연보조제까지 동원해가며 담배를 멀리하고 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섯 살배기 딸과 세 살배기 아들에게 좀 더 건강한 아빠로 남기 위해서다. 14일 ‘나는 아빠다’의 개봉을 앞둔 그는 “아내는 말할 것도 없고 애들 눈치까지 봐야 하니 아빠란 자리는 언제나 어려운 것같다”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지었다./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 나는 배우다
김승우가 연기하는 극중 한종식은 심장병에 걸린 딸(김새론)을 살리기 위해 나쁜 짓을 서슴치 않는 형사다.
20년 연기 인생 최초로 악역에 도전했다. 물론 부성애란 전제가 깔려 있지만, 거친 욕을 입에 달고 사는 캐릭터에서 부드럽고 온화한 평소 이미지는 엿볼 수 없다.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번째는 처음으로 출연 제의가 들어온 악역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서였죠. 또 실제로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부성애란 감정을 캐릭터에 녹여보고 싶더군요. 어휴, 그런데 살짝 만만히 봤다가 혼났습니다.”
연기하는 인물과 자연인 김승우를 항상 분리하고 살지만, 이번에는 쉽지 않았다. 감정이입이 너무 심해 촬영기간중 뜬눈으로 밤을 새고 악몽에 시달리기 일쑤였다. 출산 직후 아들이 유괴당하는 내용의 ‘그 놈 목소리’에 출연하면서 엄청난 마음고생을 치른 아내 김남주로부터 조언을 받기도 쉽지 않았다. 지방 촬영이 많았기 때문이다. ‘배우는 영혼의 상처를 안고 산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 나는 아빠다
아이들이 다치고 고생하는 줄거리의 영화는 질색이다. 지난해 최고의 히트작이었던 ‘아저씨’도 그래서 보지 않았다.
집에서는 자녀들의 교육을 걱정하는 아주 평범한 가장이다. 아내도 마찬가지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딸의 초등학교 취학 문제를 일찌감치 지난해부터 고민중이다. 그저 바르고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그만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막상 학교에 갈 때가 다가오자 여기저기 분주하게 뛰어다니며 이 애기 저 얘기를 듣는 부부의 모습에 ‘우리도 어쩔 수 없구나’ 싶을 때가 자주 있다고 한다.
시간이 날 때면 와인을 곁들이며 부부끼리 대화의 시간을 자주 가진다. 이 시간만큼은 세상에서 가장 냉정한 모니터 요원으로 변해 상대의 연기에 대한 신랄한 비판도 주고받는다.
결혼 초반에는 비판의 수위가 너무 높아 토라진 적도 있다. 그러나 곰곰히 따져보니 유일한 아군이나 다름없는 배우자의 조언이야말로 가장 새겨들어야 할 말이었다. 아빠라서, 가장이라서, 남편이라서 연기도 좋아진다.
▶ 나는 MC다
KBS2 ‘승승장구’를 진행한 지 벌써 일년째다. 길어야 6개월을 마음먹고 들어왔던 처음을 떠올리면 스스로가 대견하다.
배우로서의 존재감이 희석된다는 일부의 걱정도 있지만, 얻은 게 많아 즐겁고 행복할 따름이다. “자기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을 만나며 배우는 게 정말 많습니다. 얼마전에는 남진 선배님의 노래를 듣는데 선배님의 지나온 세월이 머릿속에 그려지면서 주책맞게도 눈물이 주루룩 흐르더라고요.”
다음달부터는 MBC 드라마 ‘미스 리플리’(가제)로 안방극장을 찾는다. 성공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여주인공(이다해)과 치명적이면서도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드는 냉철한 성품의 호텔 간부다.
오랫만에 도전하는 정통 멜로 연기에 “부담감도 있지만 설레임이 앞선다. 편안해 보이는 남자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진한 감정에 빠져들고도 싶은 게 배우 아니겠는가”라며 의욕을 내비쳤다. 사진/최현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