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양파(32)가
4년 만에 마이크를 잡았다.
화려하게 데뷔해 주목받던 10대를 지나
연이은 악재를 힘겹게 견디고
이겨야 했던 20대를 보내고 30대로 돌아왔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
음악적 지향점 모두 운명으로
받아들인다는 그는
한결 분명하고 여유로워졌다.
예민·완벽 털어낸 4년
일할 때 극도로 예민하고 완벽을 추구하는 양파와 허술하고 바보스럽기까지 한 평소 이은진(본명)은 확연히 구분됐었지만, 이제 자신도 모르게 후자의 모습으로 변해 가고 있다.
“예전엔 더 순수했는지 제가 지키려는 이미지가 있었어요. 이제는 이래도, 저래도 그만이에요. (웃음) 옛날 같은 정형적인 모습은 재미없잖아요.”
세월의 흔적이겠지만, 딱딱하고 진지하게 성공에 대한 결의에 차 있던 4년 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
“‘제대로 왕창 떠보자’가 아닌 ‘30대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바뀐 거죠. 과거에는 대중성은 추구하면서도 늘 어딘가에 내가 가야 할 음악적 방향이 있을 거라 믿었어요. 정착하지 못하고 파랑새를 쫓았던 거죠. 이제야 앞으로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한 정체성을 찾았고, 이번 음반이 2라운드의 시작이에요.”
작곡가 윤일상으로부터 “아직 네 목소리를 운영할 줄 모른다”는 말을 듣기도 하며, 과거 음악은 이것저것 찔러보는 데 그쳤다. 이제야 앞으로 가야 할 길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앨범 한두 장에 일희일비할 상황은 아니잖아요. 꾸준히 음악을 해야 할 시기에 접어든 것 같아요. 대중성이라는 큰 전제 아래 편하게 노래할 거예요.”
이적이 발견한 ‘나의 뽕 끼’
이번 미니앨범의 타이틀 ‘엘레지 누보’는 이런 변화와 앞으로의 음악 방향을 말해준다. 지금 세대의 비가(悲歌)를 담당하겠다는 의미다.
“데뷔 때 이적 오빠가 ‘넌 심수봉 선배의 계보’라고 하더라고요. 선배님의 진가를 몰랐던 그때는 그 말이 썩 좋진 않았어요. 나이를 먹으면서 여가수로 오래 남는 법을 고민하다가 심수봉 선배님의 노래를 많이 듣게 됐어요. 노래는 말할 것도 없고 문학적인 가사와 분위기까지. 그 깊이를 이제야 알게 됐죠.”
심수봉을 향한 오마주를 담아 ‘그때 그 사람’이라는 곡을 직접 작사·작곡했다. ‘당신은 누구시길래’ ‘사랑밖엔 난 몰라’ ‘눈물의 술’ 등 심수봉의 노래 제목을 가사에 담았고 멜로디에는 스윙, 재즈,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섞었다.
엘레지의 진한 감성과 호소력 짙은 목소리를 타고난 그는 “사람들이 즐겨 듣고 위로가 되는 사랑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나에게 질문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타이틀곡 ‘아파 아이야’는 “팝스러우면서 뽕스러운 멜로디가 담긴 노래”라고 했다.
“팝의 느낌으로 만든 곡인데 한국적 정서가 묻어나는 이유는 제 목소리에 워낙 ‘뽕 끼’가 넘치기 때문이래요. 빼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지만 금기시할 부분은 아닌 것 같아요. 이제는 싫든 좋든 그런 ‘뽕 끼’를 받아들이기로 했어요.”
아이유 안 부럽던 ‘소녀가수’
고 2때 데뷔 앨범을 80만 장 이상 팔아치우며 대형 스타의 탄생을 알렸지만 이후 행보는 순탄치 않았다. 2001년 4집 이후 전속계약 문제로 6년의 공백을 보냈다. 새 출발을 다짐한 회사가 경영 악화로 무너지면서 또다시 뜻하지 않은 4년의 공백을 보내야 했다.
“지금에야 생각하면 처음 6년의 공백은 저를 좀 더 큰 그릇으로 만들어준 운명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일들을 겪게 되는 것도 내가 부족해서 그런 거죠. 어릴 때부터 과대평가됐고요. 팬들은 저를 비운의 가수라고도 하는데 이 정도면 운발 좋은 거 아닌가요. (웃음)”
어떤 상황도 태연하게 받아들이는 힘이 생겼다는 그는 “1등도 좋지만 오래 지나도 많이 들어주는, 세월이 평가해 주는 음악에 집중할 때”라고 말했다.
디자인/김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