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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회일반

우이령길 따라 환경의식도 쑥쑥

민간 개방 2년 우이령보존회 동행취재

봄볕 아래 길은 고즈넉했다. 길과 풍경 말고는 아무것도 없는 듯 했다.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는 이들을 간혹 마주치긴 했지만 마치 길의 일부인냥 자연스러웠다.

“처음엔 바위 틈새에 쑤셔넣은 쓰레기들이 보기 싫게 얼굴을 삐죽 내밀었죠. 근데 시간이 지날수록 탐방객들이 달라졌어요. 이젠 길에서 거둬들이는 쓰레기 양이 하루 작은 비닐봉지 3분의 1도 채 안 된다네요. 거참, 신기하죠.”

지난 13일 오전 김영호(60) 우이령보존회 현장조사분과위원장과 찾은 우이령 길은 탐방객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는 다른 북한산 둘레길과는 사뭇 다른 모양새였다.

13구간에 해당하는 우이령길(서울 강북구 우이동~양주 장흥면 교현리 6.8㎞)은 타 구간과 달리 하루 출입인원을 통제하고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고 있다.

우이령은 애당초 산길이었다. 1960년대 미국 공병대가 작전도로를 내며 차량까지 드나들었다. 68년 북에서 내려온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 루트로 사용된 후 민간인 출입이 통제됐다. 40년 넘게 인적을 막았더니 역설적으로 자연은 되살아났다.

재작년 초여름 민간에 개방할 때까지도 말은 많았다. 90년대 초반 길을 나눠 소유한 양쪽 지자체는 큰 돈을 들여 자동차 4대가 나란히 드나드는 차도를 만들고 싶어했다.

하지만 우이령보존협의회(현 우이령보존회)를 중심으로 반대 여론이 커지면서 도로 포장 계획은 백지화됐다. 그럼에도 ‘서울과 경기북부를 연결하는 최단거리’라는 경제적 이유를 들이미는 개방요구는 여전했고, 결국 ‘탐방로’에서 합의점을 찾아 2009년 7월 길은 민간에 개방됐다.

개방 초기 우이령길은 몸살을 앓았다. 무차별적으로 밀려드는 탐방객 쓰나미에 신음하다가 개장 한 달 만에 예약탐방제로 전환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우이령보존회의 입장은 여전히 ‘보존’이다. 매주 한 차례 길을 찾아 생태지도와 보고서를 만들며 인간의 영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주중엔 다소 한가로워 보여도 주말엔 1000명에 이르는 탐방가능인원이 모두 몰려들기에 생태훼손은 어쩔 수가 없다.

그나마 우이령길은 예약탐방제가 완충작용을 해 다른 구간에 비해 피해가 덜하다. 북한산은 이미 조성된 탐방로와 샛길 때문에 600개 이상으로 조각난 상태. 북한산과 도봉산을 잇는 우이령길이 유일하게 면적단위로 통제되면서 경기도와 서울시의 생물권을 연결하는 통로로 야생 동식물의 마지막 피난처가 되고 있다.

◆중제

그래서 우이령은 상징적이다. 김 위원장은 “원래 우이령 보존의 취지는 ‘자연생태 그대로 두자’였어요. 개방 없이 보존하자는 거죠. 서울 시내에 이만한 자연이 개발에 파괴되지 않고 살아있다는 건 무척 의미가 큽니다. 생태적 관점에선 지금의 탐방로 역시 아쉬운 점이 많지만 좀 더 지켜봐야겠죠”라고 말했다.

우이령길은 스스로 학습의 장이 되기도 한다. 이곳을 찾으면 행동이 조심스러워진다. 쓰레기와 고성방가를 찾아볼 수 없고, 야생에 침범하기보다는 떨어져 바라보는 탐방 행태도 자리잡고 있다.

길은, 아니 숲은 사람을 자연스레 바꾸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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