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72세를 일기로 타계한 명배우 김인문이 생전에 엄청난 멋쟁이였던 걸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다.
고인은 드라마와 영화속 서민적이고 토속적인 풍모와 달리, 사석에서는 ‘미중년’이라 불릴 만큼 근사한 맵시를 자랑하며 외제 스포츠카를 직접 몰고 다녔다.
말년에 함께 작업했던 한 영화인은 “병중에도 멋지게 꾸미고 나타난 김 선생님이 촬영장에서 분장을 마치고 전형적인 촌로의 모습으로 거듭나는 모습을 보면 정말 경이로웠다”고 귀띔한 적이 있다.
혹시나 이 얘기를 듣고 ‘속았다’며 실망하는 이들도 일부 있을 지 모르겠다. 그러나 연기자가 일상에서도 반드시 극중 캐릭터처럼 살아야 한다는 법은 이 세상 어디에도 없다. 정서적 판단을 근거삼아 상대의 참모습을 함부로 이렇다 저렇다 결론내리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자, 아무런 정당성도 지니고 있지 않다.
대중은 ‘이미지’에 집착한다. 또 휘둘린다.
어제 끝난 재보선을 통해서도 되풀이됐지만, 유세에 나선 정치인들이 길거리에서 처음 만난 어린이들을 덥썩 품에 안고 어색한 웃음을 마구 연발하면 처음에는 ‘왜 저럴까’ 싶다가도 반복되는 행동에 무뎌지고 때론 젖어드는 게 유권자의 공통된 심리다. ‘보여지는 이미지’가 노리는 일종의 착시 효과다.
요즘의 서태지를 바라보는 팬들 대부분의 속내는 그토록 믿어왔던 이미지가 산산히 부숴지는 과정에서 느낀 실망감과 놀라움이다. 음악만 알고 이슬만 먹고 살 것같던 그가 십 수년만에 뚜껑을 열고 보니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의 주인공이었다는 사실 자체가 배신이자 배반인 셈이다.
쇼비즈니스의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견고한 ‘이미지의 성’에서 한걸음 떨어져서 지켜볼 때다. 무조건 가면을 의심하라는 게 아니다. 이미지와 실제 모습을 구분해서 취사 선택할 수 있는 여유의 문제다.
조금은 냉정하고 객관적인 자세, 이미지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새롭게 갖춰야 할 미덕인 듯싶다./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