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37년째를 맞이한 중견 배우 김해숙(56)이 영화와 본격적인 인연을 맺은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4년 ‘우리 형’부터다. 이후 ‘해바라기’ ‘무방비도시’‘경축! 우리 사랑’ ‘박쥐’ ‘친정엄마’ 등을 통해 숙성된 연기력을 마음껏 펼쳤다. ‘마마’(1일 개봉)를 끝내고 ‘도둑들’의 촬영을 앞둔 그는 “뒤늦게 영화에 뛰어든 만큼 애착도 더 강한 것같다”며 소녀같은 웃음을 까르르 터뜨렸다./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1974년 MBC 공채 7기 탤런트로 발을 들여놓고 나서 영화 출연 제의가 몇 번 있었지만, 모두 거절하기 바빴다. 70년대 중후반 많은 인기를 모았던 성인 대상의 멜로물이 거북해서였다. “술집 여성 종업원들의 이야기를 자주 다뤄 ‘호스티스물’이라고도 불렸는데, 출연하려면 약간의 노출은 감수해야 했어요. 노출을 꺼려하다 보니 영화와 자연스럽게 멀어졌죠.”
그 시절 다양한 연령대의 캐릭터가 나오는 작품들이 많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시간이 흘러 30~40대를 안방극장에서 정신없이 보내고 나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개성으로 똘똘 뭉친 중년 여성이 영화에 나오는 횟수가 서서히 늘어났다. 변신에 능하기로 소문난 김해숙이 여러 감독들로부터 사랑받게 된 이유다.
나이가 있으므로 엄마 캐릭터를 자주 연기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엄마라고 다 같은 캐릭터는 아니라고 한다. 비슷해 보이는 캐릭터안에서 미묘한 차이점을 찾아내는 것이 연기자의 책무라고 강조한다.
그래도 매번 엄마 역을 맡는다는게 조금 지겹게 느껴지지는 않을까? “숱하게 많은 엄마를 연기했지만 ‘친정엄마’의 헌신적인 엄마와 ‘박쥐’의 집착하는 엄마, ‘무방비도시’의 소매치기 엄마는 엄청나게 다른 인물이잖아요. ‘마마’의 엄마는 남편의 폭력을 견디고 살아왔지만 소녀같은 심성을 유지하며 아들(유해진)을 남편처럼 생각하고 살아가요. 흔한 엄마처럼 보이지만, 결코 만나기 쉽지 않은 캐릭터이기 때문에 출연하기로 선뜻 마음먹었죠.”
아들 복이 많은 편이다. 물론 영화에서다. 원빈·김래원·김명민·신하균이 슬하에서 컸다. 모두들 미남이고 심성도 고와 촬영이 끝나도 실제 모자지간처럼 살갑게 지낸다. “‘마마’의 유해진 씨도 얼마나 멋진데요. 제 눈에는 예전의 아들들보다 잘생겼으면 잘생겼지, 못 생긴 건 절대 아니랍니다. 하하하. 같이 연기해보니 배우로서도, 인간적으로도 정말 괜찮은 친구였어요.”
실제로는 딸이 둘이다. 큰 말썽 부리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줘 고맙기만 하다.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연기자란 직업을 이해해 준다는 점이다. 딸들이 성장 과정에서 엄마의 바깥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면 도중에 그만뒀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스크린 안팎에서 가정의 도움을 받는 김해숙이다.
열정은 사그라들지 않는다. 오히려 불타오른다. 이달 중순부터 촬영에 들어가는 최동훈 감독의 ‘도둑들’에서도 투혼을 불사를 계획이다. 이 작품에서는 베테랑 도둑으로 나와 홍콩의 대표적인 미남 연기파 임달화와 로맨스도 펼친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그려질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설레죠. ‘범죄의 재구성’과 ‘타짜’ 등을 보고 평소 최 감독님의 팬이었는데, 출연 제의를 받고 얼마나 기분이 좋았는지 몰라요. 서울과 마카오를 오가며 마음껏 연기할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됩니다.”
충만한 도전 정신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김해숙이란 이름 석 자를 배우로서 보여줄 수 있다면, 어떤 캐릭터든 그걸로 대만족이다. 촬영장에 있을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표정에서 소박하지만 단단한 꿈이 읽힌다. 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