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민(41)을 만나자마자 “왜 그렇게 해쓱해졌냐”고 물었다. 새 영화 ‘댄싱 퀸’ 때문이란다. 전업주부인 아내의 갑작스러운 가수 선언에 당황하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연하는데,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선입견을 깨고 싶어 일부러 살을 뺐다고 한다. 9일 개봉될 ‘모비딕’에서는 특종에 목마른 열혈 사회부 기자로 나왔다. 캐릭터 분석 차원에서 기자들이 실제로 즐겨쓰는 필기구 종류까지 꼼꼼히 챙겼다. 리얼리티 구현과 색다른 변신 사이에서 자칫 헷갈릴 법도 하지만, “특정 직업군을 연기하는 데 있어 정답은 없다. 논리를 바탕으로 하되 직감을 믿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 촬영에 앞서 기자들의 실제 모습을 꼼꼼히 관찰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모 종합일간지 사회부 기자들과 같이 다닌 적이 있는데, 일단 술을 너무 많이 먹어 깜짝 놀랐습니다. 또 사회부 기자들은 경찰처럼 생각하고 행동하더라고요. 흥미로웠죠.
- 그동안 경찰(‘사생결단’ ‘부당거래’)과 탐정(‘그림자살인’)을 연기했는데, 기자가 이들 직업과 다른 점이 있던가요?
제가 지켜본 바로는 기자는 글로 모든 걸 얘기하는 직업이므로 아무래도 조금 지적이죠. 조금 유약해 보이면서도 강단있다고나 할까요? 그같은 분위기를 ‘모비딕’에서 담아내려 애썼습니다.
- 한국영화로는 보기 드물게 ‘정부위의 정부’라는 음모론이 등장하죠. 낯선 주제와 소재에 난감했을 듯싶습니다.
레퍼런스로 참고할 수 있는 작품이 없어 초반에는 매우 힘들었어요. 더스틴 호프먼과 로버트 레드퍼드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파헤치는 기자들로 출연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무척 재미있게 봤는데, 그 영화처럼 복잡한 내용을 담백하고 간결하게 전달할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습니다. 연기도 마찬가지였고요.
- 극중 이방우 기자는 최근 황정민 씨가 연기했던 캐릭터들 가운데 가장 직선적입니다.
잘 보셨어요. 최대한 스트레이트하게 그리려 노력했습니다. 캐릭터까지 배배 꼬여버리면 안 그래도 복잡한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단순명쾌한 방식으로 인물을 표현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 함께 출연한 김상호·김민희·진구와의 연기 호흡이 좋았습니다.
촬영이 끝날 때쯤 우리들끼리 모여 “꼭 다시 뭉치자”고 약속했어요. 동갑내기 (김)상호나 진구는 워낙 예전부터 연기를 잘했던 친구고, 특히 후배 여기자로 출연한 (김)민희는 이번 영화를 통해 뒤늦게 진가를 발견했어요. 몇몇 장면은 시나리오가 아닌 민희의 설정대로 촬영됐을 만큼, 감각이 뛰어났습니다. 보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재능이 있었어요.
- 시대적 배경이 1990년대 초반입니다. 고증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아예 옛날이면 오히려 나을텐데, 이건 정말 어중간하더라고요. 17년전과 지금이 너무 달라 로케이션 장소를 물색하는데 끊임없이 애를 먹었죠. 제주공항 청사 출입구에서 크레인에 카메라를 달고 롱테이크로 마지막 장면을 찍는 과정에서 일제히 휴대전화를 들고 나오는 사람들때문에 엄청나게 고생했습니다. 당시는 휴대전화가 없었는데 우연히 화면에 잡히기라도 하면 ‘옥에 티’잖아요. 휴…, 우리나라는 뭐든지 너무 빨리 바뀌는 것같아요.
- 매 작품마다 그렇겠지만,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주연급 배우로서의 책임감과 부담감이 갈수록 커질 것같습니다.
특히 신인 감독들과 일할 때 더 그런 편입니다. 현장에서 감독이 의견을 물어볼 때면 속에서 ‘나도 몰라. 알아서 하세요’란 말이 절로 튀어나오죠. 솔직히 제 앞가림도 못하는 판에 누가 누구에게 조언하겠어요? 하하하.
- 벌써 여름입니다. 이루고 싶은 소망이 있다면요.
우선은 ‘댄싱 퀸’을 잘 찍어야겠죠. 개인적인 바람은 이창동 감독님같은 분들과 꼭 한 번 작업했으면 좋겠어요. 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하게 개조할 수 있는 연출자와 호흡을 맞췄으면 해요. ‘부당거래’와 ‘모비딕’처럼 좋은 작품들로 40대를 맞이했으니까, 지금쯤은 완벽한 변신의 기회를 경험할 시점이라 봅니다. 사진/서승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