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소설에서 제목을 가져온 ‘모비딕’은 이런 상황의 우리나라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다.
1990년 당시 보안사에서 근무하던 윤석양 이병의 민간인 사찰 양심선언은 영화적 상상력의 모티브가 됐다.
특종에 목마른 사회부 기자 이방우(황정민)는 1994년 11월20일 서울 근교 발암교에서 벌어진 의문의 폭발 사건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다. 어느날 그에게 고향 후배 윤혁(진구)이 찾아와 자료들을 건네는데, 그 자료들은 발암교 폭파가 북한 간첩의 소행이라는 경찰의 발표와는 달리 누군가에 의해 조작된 사건임을 암시한다. 이방우는 동료 기자 손진기(김상호), 성효관(김민희)과 특별취재팀을 꾸려 이 사건을 파헤치고, 취재 과정에서 형체 없는 거대 권력과 맞서게 된다.
발암교 폭파 신부터 범상치 않은 ‘모비딕’은 외형적으로 짜임새 있는 구성과 긴장감 넘치는 편집, 시대적 상황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세트와 소품 그리고 현실감 넘치는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들의 열연이 빛난다.
연출을 맡은 박인제 감독은 신인답지 않은 지구력과 관객들의 호흡을 읽어내는 연출력을 보여준다.
한편 내적으로 보면 ‘컨스피러시’ ‘인터내셔널’ ‘그린 존’ 등과 같은 할리우드 음모론 영화와 좀 다르다. 이들이 개인이 거대 권력의 음모를 파헤쳐 실체를 드러내게 하는 과정을 그렸다면, ‘모비딕’은 권력의 실체보다는 목숨을 걸고 그 실체를 파헤치는 기자들의 고군분투에 초점을 맞춘다.
권력의 실체는 소설 속 거대한 흰고래처럼 좀체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이방우에게 감정이입된 관객들은 권력의 압박감을 더욱 크게 느낀다. 더욱이 그 권력은 1994년부터 현재까지도 이어진다고 암시되므로 영화의 여운은 길게 남는다. 과연 ‘정부 위의 정부’는 존재하는 것일까? 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이원·영화 칼럼니스트 latehop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