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속 ‘마초’와 드라마속 ‘완벽남’을 오가느라 헷갈리고 지칠 법도 하다. 그러나 윤계상(33)의 얼굴은 해맑은 미소로 가득했다. MBC ‘최고의 사랑’이 제목처럼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는 가운데, 거친 사내로 변신한 영화 ‘풍산개’가 23일 개봉되기 때문이다. “요즘처럼 행복하기만 하면 바랄 게 없다”는 그를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 막바지 드라마 촬영으로 무척 바빴겠다.
24일 종영을 앞두고 어제(20일) 내 출연 분량을 모두 끝냈다. 5회부터는 매일 밤샘 촬영이었다. 육체적으로 한계를 넘어설 뻔했다. 실은 ‘풍산개’를 경험하고 나니 아무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하하하.
- 극중 구애정(공효진)이 누구와 맺어지나?
스포일러라 자세히 말씀드릴 수는 없고, 등장인물 모두가 밝은 결말을 맞이한다는 것 정도만 밝히겠다.
- 드라마속 윤필주는 여성이라면 누구나 선망하는 완벽한 남자다.
맞다. 그래서 어색하고 힘든 점도 있었다. 가끔씩 독고진 역의 (차)승원 형처럼 마음 내키는대로 말하고 행동하고 싶은 욕망이 들기도 했다.
- 한없이 부드러운 남자가 ‘풍산개’에서는 대사 한마디 없는 ‘야생남’으로 나온다.
내 안에 마구 꿈틀대던 마초적인 기질을 원없이 쏟아냈다고나 할까. 지난해 가을 드라마 ‘로드 넘버원’이 실패하고 몸과 마음이 지쳐있을 때쯤 이 작품의 출연 제의를 받았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반했고, 바로 수락 의사를 전했다.
- 캐릭터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을 것같다.
그때는 자포자기해 매일 술 마시고 몸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다. 그런데 영화는 근육질을 원했다. 정말 미친듯이 한달동안 식이요법과 웨이트를 병행해 몸을 만들었다.
- 왜 자포자기했나?
출연작들이 내 노력과 상관없이 외적인 환경에 의해 평가 절하되는 것같아 솔직히 절망했다. ‘로드…’ 직전에 출연했던 영화 ‘집행자’도 완성도와 상관없이 저예산 영화란 이유로 극장에서 홀대받았다. ‘아예 활동을 쉴까’도 생각했다.
- 당시의 갈증이 ‘풍산개’로 채워졌을 듯싶다.
물론이다. 남북을 마음대로 오가는 정체불명의 사내를 연기할 수 있는 기회가 쉽게 오겠나? 몸뚱아리를 활활 불태우고 재가 되겠다는 각오로 임했다. 촬영 과정은 힘들었다. 한달간 25회차 촬영으로 장편을 뽑아내야 했으니까. 12월에 얼어있는 개천을 깨고 물속에 들어갔다. 차가운 물이 칼처럼 피부를 쑤셔대면서 심장마비에 걸리는 줄 알았다. 휴…, 당시의 어려움은 책 한 권을 써도 부족하다.
- 제작자인 김기덕 감독은 만나봤나?
감독님이 머물고 계신 강원도의 산장으로 찾아갔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집에 간 사람은 연출자인 전재홍 감독과 나까지 4명이 전부라고 하더라. 외부로 보이는 이미지와 달리 정말 자상하고 부드러운 분이었다. 집필중인 시나리오에 대해서도 많은 얘기를 들려주셨는데 귀가 쫑긋할 정도로 재미있었다. 불러만 준다면 김 감독님과 꼭 작업하고 싶다.
- 어느덧 god로 활동했던 시간보다 배우로 일한 시간이 더 길어졌다.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연기자로 봐 준다. 특히 ‘풍산개’ 촬영장의 스태프는 더 그랬다. 때론 고집을 부리느라 연출자와 의견이 심하게 부닥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배우로서의 강한 자신감이 붙었다. 아이돌 출신이란 수식어도 괜찮지만, 솔직히 연기자로 인정받는 게 더 흐뭇하다.
- 드라마와 영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고 난 뒤가 훨씬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일단 쉴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변신의 기회를 노릴 것이다. 극소수의 톱스타가 아니면 작품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잡기가 정말 어렵다. 그러기 위해 주류건 비주류건 실험적인 작품이라면 언제든지 나설 생각이다. 지난해 출연했던 ‘조금만 더 가까이’와 ‘풍산개’처럼 저예산 영화라 하더라도 색다른 구석이 있으면 대환영이다. 사진/최현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