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기방장한 섹시가이에서 은발의 노신사로 거듭난 할리우드 톱스타 리처드 기어가 진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매력을 뽐냈다.
20일 5박6일간의 일정으로 한국을 찾은 기어는 22일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순례의 길’ 사진전 기념행사에 참석했다. 이 사진전은 그가 1980년대부터 티베트와 인도 등지를 돌며 직접 찍은 사진 64점 등을 전시한다.
사진을 시작한 계기에 대해 “어렸을 적 부모님으로부터 카메라를 선물받은 게 시작이었다”며 “네모안에 세상을 담으려면 내 관점으로 바라보고 판단해야 하므로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철학도(매사추세츠 철학과 중퇴) 출신 답게 첫 내한 소감은 철학적이었다. “한국과의 관계가 시작됐으므로 또 오고 싶어질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시간을 두고 한국과의 이야기가 어떻게 발전할 지 두고봐야 한다”고 답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그는 전날 조계사를 방문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밝혔다. 특히 사찰 인근의 채식 전문 식당에서 맛본 음식은 이제까지 먹어본 요리들 가운데 최고였다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티베트 독립 운동을 상징하는 달라이 라마의 수제자로 독립을 막는 중국에 대해서는 자청해서 정치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1990년대 초반 티베트의 중국 감옥에서 고문을 당하고 풀려난 여자 승려들을 만났고, 또 이들이 고문당하는 모습을 그린 벽화를 사진에 담았다”고 말했다.
한편 “당신을 좋아하는 한국의 주부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한다”는 한 취재진의 요청에는 “실은 내 나이가 아흔 셋”이라며 “만약 말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길 듯 싶다. 변호사들에게 물어보겠다”고 재치있게 답해 웃음을 자아냈다.
올해 62세인 기어는 ‘007 살인면허’의 본드걸 출신인 아내 캐리 로웰 및 아들과 함께 한국에 왔다. 남은 기간동안 경남 양산 통도사에서 템플 스테이를 경험할 계획이다./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사진/서승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