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유차를 운전하는 직장인 박재홍(41)씨는 태풍의 영향으로 엄청난 비가 쏟아진 26일 오전 서둘러 동네 주유소를 찾았다. 정유사들의 기름값 할인 조치 종료를 10일 앞두고 주유소들이 사재기에 나서며 일부에서는 영업을 중지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있다는 뉴스를 봤기 때문이다. 실제로 가까운 단골 셀프주유소 입구에는 ‘경유 주유 안됨. 죄송합니다’란 안내문이 걸려있어 할 수 없이 5분 거리에 있는 주변보다 비싼 주유소에 가서야 기름을 가득 넣을 수 있었다.
‘2차 주유소 대란’이 벌어질 조짐이다.
지난 24일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략비축유를 방출하기로 결정하면서 국제 유가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있지만 국내 기름값의 오름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소비자들의 심리적 마지노선인 리터(ℓ)당 2000원 선도 조만간 넘어설 것이라는 암울한 관측마저 나올 정도다.
26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25일 무연 보통휘발유의 전국 평균가격은 전날보다 ℓ당 0.45원 오른 1921.84원을 기록했다. 10일(1910.72원) 최저점을 찍은 후 보름 연속 오른 셈이다.
◆ 서울 ℓ당 2000원 눈앞
지역별로 서울의 평균 휘발유 가격(25일 기준)이 ℓ당 1998.59원으로 2000원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인천(1941.89원), 제주(1938.04원) 등에서도 휘발유값이 다른 시·도보다 상대적으로 비쌌다. 경유가격 역시 13일째 상승하며 1746.62원(25일 기준)을 기록 중이다.
이는 정부가 물가를 잡겠다며 정유사를 압박해 내놓은 기름 공급가의 할인 조치가 다음달 6일로 종료되면서 주유소는 물론 일반인들도 사재기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실제로 요즘 주유소에는 얼마 전 만 해도 찾아보기 힘들었던 ‘만땅(가득) 손님’이 크게 늘었다.
은평구의 한 주유소 직원은 “기름값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2만∼3만원씩만 주유하는 손님이 대세였는데 최근 들어 ‘만땅’을 외치는 손님이 많아졌다”며 “아무래도 100원 할인이 없어지기 전에 최대한 많이 넣으려는 듯하다”고 전했다.
정유사의 공급량이 부족하다 보니 아예 덜 팔려고 값을 올린 주유소도 등장했다. 서대문구의 한 주유소 사장은 “정유사가 최근 배급제로 기름을 공급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떨어지기 일쑤”라며 “물량이 떨어져서 못 파는 것보다 차라리 비싸서 덜 팔리는 게 나은 것 같아 가격을 올렸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휴가철에 공급가 할인 방침이 끝나면서 직장인들의 휴가패턴도 달라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벤처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정수영(46)씨는 “이번 휴가 때에는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과 함께 자동차를 타고 남도 캠핑여행을 하려고 했는데 기름값이 너무 비싸 포기했다”며 “그냥 기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으로 일정을 조정할 생각”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