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대가 구타와 폭언 등 후진적인 군기문화를 퇴출시키기 위해 개혁의 칼을 빼들었다.
18일 국방부와 해병대에 따르면 이달부터 구타와 폭언, 욕설, 왕따, 기수 열외 등 가혹행위에 가담한 해병대 병사에 대해서는 해병대원을 상징하는 ‘빨간 명찰’(붉은 명찰)을 일정 기간 떼어내고 해병대사령부 직권으로 다른 부대로 전출시키기로 했다.
해병대에 복무하는 병사가 붉은 명찰을 달지 않으면 사실상 ‘유령 해병’과 마찬가지로 아직 그런 전례를 찾기 어려워 해병대에서는 가장 큰 벌칙으로 받아들여진다.
해병대 관계자는 “7주간의 신병훈련 기간 중 극기훈련이 끝나는 6주차 금요일에 해병대원임을 상징하는 붉은 명찰을 달아주는 의식을 치르고 있다”며 “빨간 명찰은 해병대 장병에게 책임과 의무를 다하라는 명령인 동시에 징표”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해병대는 중대급 이하 부대에서 구타와 폭행 등이 적발되면 아예 해당 부대를 해체해 재창설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해병대사령관이 부대를 해체하고 재창설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에 대한 법률 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라면서 “그 결과에 따라 시행 여부가 결정될 것 같다”고 전했다. 하지만 해병대는 기수를 폐지하는 방안은 검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해병 기수를 유지하면서 기수문화의 장단점을 자세히 분석해 새로운 기수 개념을 정리한다는 방침이다.
◆병영문화혁신 대토론회 개최
한편 이날 김포시 해병2사단 필승관에서는 군 관계자와 민간 전문가 등 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해병대 병영문화혁신 대토론회’가 열렸다. 특히 김관진 국방장관, 김성찬 해군참모총장, 유낙준 해병대사령관 등 군 수뇌부가 이례적으로 한자리에 모여 해병대 사병들과 민간 전문가들의 비판을 경청해 눈길을 끌었다.
해병대 1사단의 신현진 상병은 “기수가 때려도 되고 맞아도 된다는 사적 제재 수단으로 변질됐다”고 지적했고 22년간 해병대 부사관으로 근무 중인 김기완 상사는 “문제점을 알고서도 척결 의지가 부족했고 호봉제에 의한 병들의 음성적 지휘를 묵인하거나 방관했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김 장관도 “구타나 가혹행위, 집단 따돌림 등을 해병대의 전통이라고 생각하는 행위는 인권을 유린하는 범죄”라며 “구타가 없다고 전투력이 약해진다는 것은 말도 안 되며 선진국 군대일수록 고참병의 횡포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일부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지휘관들의 가혹행위 은폐, 관심사병·총기관리 소홀 원인 등에 대한 실태 파악을 뒤로 한 채 대안부터 내놓는 것은 쏟아지는 비난을 막아보려는 미봉책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