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박해일(34)이 활 한 자루만을 쥔 채
100억원대 블록버스터에 홀로 뛰어들었다.
데뷔 후 첫 사극에 본격 활 액션까지,
도시를 무대로 서성대던 그에게
영화 ‘최종병기 활’(다음달 11일 개봉)은
도전의 연속이었다.
● 궁술·승마·만주어 속성
1월 ‘심장이 뛴다’ 개봉을 앞두고 고민이 가득했다. 이번 영화 출연 제의를 받고 어느 때보다 비장한 각오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첫 사극이라는 점뿐만 아니라 시나리오에 나와 있는 제 캐릭터가 말을 달리며 자유자재로 활을 쏘는 신궁이라는 사실에 선뜻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제게 최고난도의 육체적 능력을 요구했죠. 작은 부분 하나에서라도 관객에게 실망감을 준다면 영화 전체에 피해를 줄 수 있잖아요.”
영화는 인조반정 이후 모든 것을 잃고 조용히 살다 병자호란이 일어나면서 청나라의 포로로 끌려간 누이(문채원)를 구하기 위해 전쟁에 뛰어든 신궁의 이야기다.
고민 끝에 신궁 남이 역을 결정하자 곧바로 지옥훈련이 이어졌다. 1월부터 궁술, 승마, 만주어를 2개월 속성으로 배웠다. 눈이 채 녹지도 않은 승마장에서 처음으로 말 등에 올라탄 그는 워밍업을 할 새도 없이 첫날부터 달리기 시작했다.
“다행히 큰 부상은 당하지 않았지만 낙마 사고는 번번이 일어났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그만큼 느리게 탈 거라는 게 제작진의 생각이었어요. 청나라 군사와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의 기운을 준비 단계에서부터 끌어내겠다는 의도였죠.”
●● CG 대신 진짜 화살 슝∼
시나리오로 마음을 다잡았지만 막상 촬영현장에서 마주한 광경에 쉽게 적응할 수 없었다. 한국 영화 영상기술의 급속한 발전에 맞게 컴퓨터 그래픽의 도움을 상당 부분 기대했지만 현장은 그렇지 않았다.
“실제에 버금가는 화살이 날아다니는 현장은 상당히 위험했고, 쉽게 갈 영화는 아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우가 제자리에 가만히 있어서는 절대 카메라가 돌아가지 않는 다이내믹한 현장의 연속이었죠.”
전북 고창 선운산 인근에서 대부분의 촬영이 진행된 가운데 그냥 걷기에도 숨이 찬 산을 달리고, 또 달렸다. 대부분의 스태프가 등산화 한 켤레 이상은 갈아 신었고, 그 역시 등산화의 기능에 턱없이 모자란 특수 제작된 신발을 여러 차례 갈아치워야 했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현장 속에 어느새 신궁의 모습을 갖춰 가고 있었다. 바른 자세로 서서 쏘기도 힘든 국궁을 마구 달리면서도 쏘게 됐다.
“파스 냄새가 끊이지 않았고, 엄지와 검지 사이 살이 파고들어 가는 것을 보면서 회차가 늘어 가는 것을 실감했죠. 매번 영화를 할 때마다 같은 심정이에요. 고생해야 관객이 좋아해 주는 건 분명하거든요.”
●●● 떠들기만한 과거
지난달 초 촬영을 끝내고 며칠간 끙끙 앓았다는 그는 “운동신경이 없는 편이 아닌데 일상을 회복하는 데 힘이 들었다. 한동안 그 시대에서 빠져나오기 힘들 것 같다”고 작업을 끝낸 소감을 전했다.
“그동안 너무 말로만 떠들어왔는데, 스피디하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배우라는 인상을 심어줬다는 점에서 확실한 변화가 기대되는 작품이에요.”
이번 영화 개봉과 함께 다음 영화 출연 계약도 앞두고 있다.
“전보다 작품을 더 하고자 하는 욕구가 생기는 시기인 듯해요. 경험들에서 자양분을 얻고, 활용하고 싶어지는 시기죠. 주저하기보다 좀 더 능동적으로 해보자는 마음이 생겨요. 이러고 있는 저 자신이 어디까지 갈지 저도 궁금해요.”
사진/서승희(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