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산기를 두드리면 뭐해요? 마이너스 가계부인 걸….”
돈이 마른 가계부에 주부 배현진(35)씨의 속은 타들어간다. 빚만 없어도 좋겠다. 지난해 아파트 전세금으로 1억3000만원을 대출받은 게 큰 짐이다. 이자까지 매달 200만원이나 빠져나간다. ‘헉’소리 나는 물가에 장을 한 번 보면 10만원은 금세 없어진다. 부부가 야근까지 하며 일해도 초등학생 딸의 학원비 대기도 빠듯하다. 지난 봄엔 아버지 수술비로 마이너스 통장까지 만든 탓에 빚을 쓰고 갚기를 뒤풀이하는 중이다.
여기저기서 위태로운 아우성이다. 살림살이를 말해주는 경제지표에 죄다 빨간불이 켜졌다. 배씨를 비롯해 우리나라 가계가 허덕이는 빚은 900조원에 다다랐다. 사상 최대 규모다. 28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2분기 가계빚은 전분기보다 19조원 가량 늘면서 900조원에 바짝 다가섰다.
◆물가까지 짓눌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물가 오름세가 너무 가파르다. 28일 농수산물유통공사(aT)에 따르면 최근 고랭지 배추 1포기 가격은 4098원. 한 달 전(3082원)보다 33%나 뛰었다. 추석을 앞두고 신고배(10개 한 상자·4만2904원) 가격도 올라 1년 전보다 77% 비싸다. 정부는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7월의 4.7%를 뛰어넘어 올해 최고치를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다. 3년 만에 5%를 넘어서는 셈이다.
돈이 없는 가계는 결국 마이너스통장 대출에 기대고 있다. 마이너스통장 대출을 의미하는 예금은행의 기타대출의 2분기 잔액은 45조1000억원으로 전분기보다 4조1000억원이나 늘었다.
그나마 서민들이 문을 두드렸던 은행 대출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이달 시중은행들의 가계대출 한도가 대부분 꽉 차 대출 영업을 사실상 중단한 상태다. 이 때문에 월말에 돈이 필요한 가계와 소규모 자영업자들은 저축은행과 대부업체 등을 전전하고 있다.
◆저소득 중심 건전성 강화해야
가계 빚이 불어날 대로 불어난 데다 물가까지 짓누르면서 중산층의 살림살이도 팍팍해졌다. 28일 현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바에 따르면 중산층 가운데 적자가구 비중이 크게 늘었다. 1990년 15.8%였던 적자가구 비중은 지난해 23.3%까지 높아졌다.
가장 형편이 어려운 건 저소득층이다. 그나마 소득 상위 20% 가계의 2분기 실질 소득은 4.7% 증가한 데 반해, 소득 하위 20% 가계는 소득이 2.0% 늘어나는 데 그쳤다.
가계 부담을 줄일 묘안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저소득층과 자영업자에 대한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LG경제연구원의 이근태 연구위원은 “생활자금이나 사업자금 목적의 대출을 쓴 저소득층, 자영업자를 중심으로 가계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므로 저소득층 지원과 서민금융 확대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