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오지 전문배우’라고 부르는 박희순(41)이 이번에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검사로 변신했다. 29일 개봉될 법정 스릴러 ‘외뢰인’를 통해서다. 21일 서울 삼청동의 한 고즈넉한 한옥 카페에서 만난 그는 “동티모르에서 찍은 ‘맨발의 꿈’같은 전작들과 달리 몸을 혹사시키지 않아 좋았지만, 촬영 후반부로 갈수록 머리가 아파 혼났다”고 털어놨다.
오랜만에 연극 연습하는 기분으로 촬영에 임했다. 대사량이 워낙 많아 크랭크인 두 달전부터 암기했다. 낯선 법률 용어를 입에 달라붙게 하는 것도 골칫거리였다. “함께 연기한 강성희 변호사 역의 (하)정우도 대사를 외우느라 고생 좀 했죠. 법정 장면에선 둘이 힘을 합쳐 동선까지 직접 짰는데, 다행히 잘 나온 것같아 뿌듯합니다.”
그가 연기하는 안민호 검사는 법인 검거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아내를 살인한 것으로 의심받는 남편 한철민(장혁)의 혐의를 입증하는데 온힘을 바치는 인물이다. “긴장감을 주도하는 캐릭터죠. 보기에 따라서는 좋아보일 수도, 나빠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이었어요. 하지만 누가 실제로 검사를 시켜준다고 하면 사양할 겁니다. 머리 아프게 살고 싶지 않거든요. 하하하.”
2009년 ‘10억’ 이후로 여배우와 호흡을 맞춘 작품이 없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후배 박예진과 열애중이다.
혼기를 넘긴 탓에 주위에서는 “국수 언제 먹느냐”며 은근히 결혼을 권하지만, 아직은 계획이 없단다. 30대일 때는 결혼이 급했으나, 마흔을 넘기면서 오히려 싱글 라이프를 즐기자는 쪽으로 마음이 바뀌었다. “그 친구(박예진)나 저나 일을 더 하자는 주의입니다. 좋은 소식이 있으면 알려드리겠지만. 지금으로선 드릴 말씀이 없어 죄송하네요.”
올 연말에는 ‘가비’의 개봉을 앞두고 있다. 조선의 몰락 과정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고종으로 나온다. “나는 커피의 쓴 맛이 좋다. 내 마음과 같아서다”란 대사 한 줄에 빠져들어 출연했다. “건달로 영화를 시작해 검사를 거쳐 이젠 왕까지 됐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죠. 이 정도면 연기자의 삶이 참 괜찮지 않나요?”/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 사진/김도훈(라운드테이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