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튜디오 지브리의 애니메이션은 가장 최근작인 지난해 ‘마루밑 아리에티’까지 언제나 자연을 노래하고 옛 것을 사랑한다.
손으로 원화를 직접 그리는 셀 애니메이션 방식을 고수하고, 대세나 다름없는 3D 애니메이션마저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제작자 미야자키 하야오의 ‘온고지신’ 취향 덕분일텐데, 그래서인지 이들의 작품에는 가슴을 촉촉하게 적시는 복고적인 감성이 짙게 배어난다.
29일 개봉될 ‘코쿠리코 언덕에서’는 26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지브리가 처음 도전한 청춘 로맨스물로, 이전까진 다루지 않았던 청춘 남녀의 애틋한 사랑을 더했다.
항구가 보이는 요코하마의 해안가 언덕에서 코쿠리코 하숙집을 운영하는 열여섯살 소녀 우미는 바다에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리며 매일 아침 안전한 항해를 기원하는 깃발을 올린다. 이 모습을 늘 지켜보는 한살 위 소년 슌은 알 수 없는 이끌림을 느낀다.
도쿄 올림픽 개최를 일년 앞두고 일본 사회 전체가 개발 열풍에 휩싸인 가운데, 우미와 슌의 학교도 낡은 동아리 건물를 철거하려 하고 학생들은 보존 운동에 나선다. 우미와 슌은 운동에 앞장서면서 서로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던 중, 어느날 갑자기 슌이 우미에게 “알고 보니 우리는 아버지가 같은 이복형제지간”이라고 털어놓는다.
지브리 애니메이션 마니아들에게는 여전히 만족스러울 작품이다. 단골 주제인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착이 아날로그적인 그림체를 통해 흘러넘치고, 가슴아픈 사랑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남녀까지 등장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충격적인 ‘한 방’을 원한다면 지나치게 소극적인 이야기 전개가 다소 불만스러울 수도 있겠다.
미야자키 하야오가 기획과 각본을, 아들 미야자키 고로가 연출을 나눠 맡았다. 고로는 5년전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로 아버지의 명성에 도전했으나 실패로 끝난 적이 있다. 이번 작품이 후계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마지막에 흘러나오는 주제가 ‘이별의 여름’은 모리야마 료코가 부른 1976년곡을 테시마 아오이가 리메이크했다. 언제나 그렇듯 진한 여운을 남긴다. 12세 이상 관람가./조성준기자 when@metr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