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광화문 인근 회사에 다니는 권재희(39)씨는 여행 가방을 들고 출근길을 나선다. 올해 초 충북 청원군에 있는 전원주택단지로 이사하면서 KTX로 왕복 270km의 거리를 출퇴근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 6시께 집에서 나와 오송역까지 0.8km 남짓 걸어 KTX를 타고 서울역에 도착,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시청역에서 하차해 회사까지 걸어간다. 출근에만 총 1시간30분 정도가 걸린다. 야근이나 술자리로 막차(오후 11시30분)를 놓치면 찜질방에서 밤을 보내기도 한다. 그런데도 이런 불편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서울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넓은 정원 딸린 집에서 아토피를 앓는 아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기 때문이다.
#2. 지난해 말 충북 오송으로 이전한 국책기관에 근무하는 공무원 김모(49)씨는 한때 이사를 고민했다. 하지만 아내가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교육문제를 내세우며 반대를 했다. 친구·친척들과 멀리 떨어지는 것도 께름칙했다. 그는 서울 강남에서 오송으로 매일 출퇴근을 한다.
최근 ‘초장거리 통근족’이 급증하고 있다.
살인적인 전세난과 숨 막히는 대도시 생활을 벗어나 쾌적한 곳에서 삶의 여유를 찾으려는 직장인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면 공공기관·회사 등의 이전으로 피치 못하게 초장거리 통근족에 합류한 이들도 많다.
22일 한국철도공사(코레일)에 따르면 월평균 철도 정기승차권 이용자 수는 2007년 2만216명에서 올해(1∼8월) 2만4732명으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 중 KTX 정기승차권의 월평균 이용자 수는 2007년 2755명에서 올해 5242명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최근 수년간 KTX, 수도권 광역전철 천안-아산 구간, 경의선 광역전철, 경춘선 복선전철 등이 개통하면서 초장거리 통근 여건이 크게 개선된 덕분이다.
지방에서 KTX를 타고 서울역에 가는 데 걸리는 시간은 천안아산역에서 33∼38분, 오송역에서 39∼50분, 대전역에서 49∼66분에 불과하다. 서울 강남과 강북을 오가는 시간보다 적은 셈이다. 통근 비용은 50% 할인되는 평일 정기승차권을 사면 월 25만∼45만원 수준으로 자가용 출퇴근보다 저렴하다.
◆KTX개통 계기로 급증
초장거리 통근족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내년 4월 국무총리실을 시작으로 2014년까지 20개 중앙행정기관과 16개 소속 기관의 공무원 1만여 명이 세종특별자치시에서 근무해야 한다.
인천공항∼평창 구간 KTX와 제2영동고속도로도 조만간 열릴 예정이어서 수도권 북부, 강원권 등에서 전원주택 생활을 꿈꾸는 직장인들도 많다.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무엇보다 긴 통근 시간으로 가족·친구와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어 삶의 질이 크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초장거리 통근족이 많은 스웨덴에서는 출퇴근 시간이 길어지면 배우자나 동거 중인 연인과 헤어지는 사례가 일반인보다 40% 더 많다는 조사도 나왔다.
김화수 잡코리아 대표는 “직장인들의 통근 시간이 늘어나면 업무에 대한 몰입도가 떨어지고 건강도 해치기 때문에 사회·국가적으로도 손해가 크다”며 “출근하지 않고 집 근처에서 업무를 볼 수 있는 사무실인 스마트워크 센터 도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