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느리게 걷고 싶은 가을과 닮았다.
지난 3년3개월 동안
트렌드는 빠른 속도로 흘러갔지만
그저 자신이 있던 자리로만 되돌아오려 했다.
성시경(32)이 7집 ‘처음’을 발표했다.
‘트렌디’하지 않은 음악
제대한 지 1년3개월이 지나서야 나온 이번 앨범은 아날로그 방식을 고수한 12곡으로 채워졌다. 트렌디한 곡을 쓸까 고민도 했지만 ‘일단 예전의 나로 돌아오자’고 마음먹었다.
“컴퓨터로 사운드를 꽉꽉 채운 요즘 음악과 다르다 보니 믹싱하는 분이 ‘정말 이게 다야?’라고 물어보더라고요. 저 같은 사람 하나 정도는 요즘 시대에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여기서 고집을 꺾는다면 저 같은 후배들이 설 자리는 없을 것 같았죠.”
트렌디하지 않은 음악은 그래서 더 요즘 음악 시장에 개성 있게 들린다. 리얼 악기는 컴퓨터 사운드를 대신했다. 자신이 작곡한 타이틀곡 ‘난 좋아’는 전주 없이 후렴구부터 강렬하게 내리꽂는 히트곡 공식에서 완전히 벗어나 피아노와 바이올린의 선율이 한참 흐른 뒤에 나지막이 노래가 시작된다.
1990년대 명콤비 윤상과 박창학,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를 쓴 작곡가 강승원 등으로부터 받은 음악은 ‘옛것’을 고수하려는 코드에 딱 맞아떨어진다.
‘스마트’하지 않은 스타
삶도 음악과 닮았다. 꾸미는 것에 관심이 없고 유행과도 거리가 멀다. 휴대전화는 최신형 스마트폰이기는커녕 낡은 구형이다. e-메일 계정도 없어 가끔 어머니 걸 쓰는 그에게 SNS 이용은 더욱 딴 세상 얘기다.
“제가 좀 구식인가 봐요. 익숙한 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조용히 술 마시는 걸 좋아하고요. 라디오처럼 조금 느리게 가도 되지 않나요. 하긴 라디오를 들으려는 수고도 매력도 못 느끼듯이 공들여 노력한 음악과 수십 년 된 뮤지션을 알아봐 주지도 기다려 주지도 않는 게 현실이죠.”
그는 “김태희, 설리 같은 아이가 곡 쓰고 기타 치고 노래도 잘하면 안 될까”라며 누군가의 워너비 뮤지션이 부재한 현실에도 아쉬워했다.
“고 김광석 선배님이 살아계시면 얼마나 큰 힘이 될까 싶어요. 기타 하나 메고 공연하러 다니는 그런 튼튼한 날개가 있으면 또 다른 선배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텐데요. 조용필·나훈아·서태지 같은 선배가 과연 세상에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런 콘텐츠가 되는 가수가 절실히 필요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