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정치에 대한 열망이 서울시장 보궐선거판을 뒤덮었다. 여기에 SNS(소셜네트워크)라는 신무기로 무장한 20~30대의 힘이 거대 여당의 막강한 조직력을 눌렀다.
당초 박빙일 것이라는 예측과 달리 넥타이·하이일 부대가 출퇴근길 투표율을 대거 높이며 박원순 범야권 후보에게 압승을 선물했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불러일으킨 ‘안풍’도 초대형 태풍으로 세력을 키우며 ‘박근혜 대세론’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27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집계에 따르면 91.6%를 개표한 오전 1시 현재 박 후보가 53.2%를 획득해 46.4%를 얻은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를 누르고 승리했다.
박 후보는 21개 자치구에서 앞섰으며, 나 후보는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와 용산에서만 승리를 챙겼다. 특히 나 후보는 자신의 국회의원 지역구인 중구에서도 완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결과는 총 선거인 1002만325명 중 459만6504명이 참여해 45.9%라는 사실상 역대 재보선 최고 투표율에서 미리 점쳐졌다. 이는 일반인들은 물론 연예인들까지 나서 SNS 등으로 투표를 독려한 덕분에 젊은 유권자들이 대거 투표에 나섰기 때문으로 보인다.
박 후보는 20~40대 젊은층에서 나 후보를 2배 이상 앞서는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반면 나 후보는 50~60대에서만 승리했다.
박 후보는 당선소감을 통해 “시민이 권력을 이기고 투표가 낡은 시대를 이겼다”며 “사람과 복지 중심의 시정이 구현될 것이다. 제일 먼저 서울시의 따뜻한 예산을 챙기겠다”고 말했다. 한편 나 후보는 “시민 여러분의 뜻을 겸허히 받아들인다. 정치권이 더 반성하고 더 낮은 자세로 나아가라는 뜻으로 여기겠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 "안철수 신당 가능성도"
시민운동가 출신 박 후보의 예상 밖 압승은 여·야를 떠나 정치권 전반에 대한 강력한 쇄신 요구가 표심으로 분출된 것으로 보인다. 정치평론가인 박성훈 후마니타스출판 대표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심화, 불평등 확대 등이 반(反) 한나라당 정서로 이어지면서 야권 단일후보를 당선시킨 것”이라며 “시민사회진영의 첫 정치도전 성공이라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라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선거에 패배한 한나라당은 물론 당 후보를 배출하지 못한 민주당도 메가톤급 격랑에 휩싸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향후 국정운영에 상당한 부담을 느낄 것으로 보인다. 이미 내곡동 사저 논란, 측근 비리 의혹 등 재보선을 앞두고 이어진 악재에 대한 책임론까지 대두되고 있다.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는 박근혜 전 대표의 신화에도 금이 가며 입지가 좁아질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표가 ‘박원순-안철수’와 대비돼 구시대 인물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반면 기존 정치권에 대한 실망과 염증에서 비롯된 ‘안풍’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소위 ‘안철수 신당’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며 “안철수 개인의 선택 여부를 떠나 범야권을 중심으로 주변에서 안 원장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