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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경제일반

우리가 그리워해야 할 것들

‘두 번 세 번 부당하구나. 삼천리 강산이 모조리 서울이 되어간다. 오, 휘황한 이벤트의 나라.너도나도. 모조리 모조리. 뉴욕이 되어간다. 그놈의 허브 내지 허브 짝퉁이 되어간다. 궂은 비 오는 날 끼리끼리이던 곳. 누가 죽으면 모두 상주인 곳. 의미가 무의미에 고개 숙이는 곳. 두고 온 그곳. 내 변방은 어디 갔나.’

시인 고은의 ‘내 변방은 어디 갔나?’의 한 대목이다. 본래 있어야 할 것들을 잃어버린 채 자기 아닌 삶을 살아하는 현실에 대한 비탄이다.

어느 대담강연에서 홍세화 선생은 각성의 제1차적 대상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정서’라고 대답한다. 의외였다. 의식이 아니라 정서. 그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 움직여야 할 감성의 결들이 욕망과 자본의 논리에 의해 사막화돼 가고 있는 걸 먼저 해결하지 않고서는, 인간과 역사, 그리고 자연 그 어떤 지점에서 우리는 올바른 시작을 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일상의 정서로 살아 움직이지 못하는 사회에서 정신적 목표는 더더군다나 생각할 수 없다.

시인 김수복도 그의 시 ‘폐허’에서 같은 목소리를 낸다. ‘사원이 폐허가 되자 사원 밖에 공장이 들어섰습니다. 사람들은 제 몸 속에 공장을 세워 무덤을 만드는 공장지대가 되어갔습니다.”

공장은 생산의 기지다. 그건 반드시 필요한 일상의 장치다. 그러나 몸이 공장이 돼버린다면 이미 그것은 죽음으로 가는 길을 여는 현실이 된다. 이 모든 것은 다 주변적 위치에 처한 변방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일 수 있지만, 그 변방이 가진 가치에 눈뜨지 못한 탓이기도 하다. 인류의 문명사에서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한 곳이 변방이 아니었던 적은 없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 이 하늘 끝까지 가는 날. 맑은 빗물이 되어. 가만히 이 땅에 내리면 어리라도 외로울까.’

해바라기가 오래 전 부른 노래 ‘뭉게구름’의 가사다. 뭉게구름의 자유와 맑은 빗물의 아름다움이 우리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는 시절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 것일까? 별이 그토록 기다리는 밤과 태양이 붉게 저무는 강기슭, 그리고 숲을 스쳐 지나는 바람의 소식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어디론가 숨어버리는 세상은 암담해진다.

이런 일상은 우리의 마음을 콘크리트처럼 굳어가게 할 뿐이다. 꽃 한 송이 피워내지 못하는 인조바위를 대량생산하면서. /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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